항목 ID | GC04203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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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杜邱洞造里堂山祭 |
영어의미역 |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Dugu-dong Jorimaeul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동리길 129[두구동 1192] |
집필자 | 김국희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조리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두구동 조리 당산제는 음력 1월 14일 자정 무렵에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1192번지에 있는 제당에서 1년에 한 번 동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두구동 조리 당산제의 연원은 마을이 형성된 시기와 때를 같이 하지만 정확한 연대를 고증하는 것은 어렵다. 두구동 조리는 신라 이전에는 장산국에 속해 있었고, 신라 시대에는 거칠산국에 속해 있어 역사가 깊은 고장이다. 특히 조리 마을 옆에 1827년 단오에 세운 조정언 비(調井堰碑)[소류지에 대한 기원을 담고 있음]가 있는 점으로 볼 때, 이곳이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기록된 동래현의 조정 부곡(調井部曲)임을 알 수 있다.
당산 할매의 제당은 1931년에 건립되었다. 제당의 함석 문 바깥쪽 위에는 창건 내력이 적힌 나무 현판이 걸려 있다. 현판의 내용에 따르면 조리 마을은 철마산 산령과 당산신이 앞뒤에서 보호해 주어 마을에 재앙이 없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정월 보름에 두 신께 제사를 드린 지가 수 백 년이 되며, 기후에 따라 제의를 지내는데 어려움이 있어 의연금을 모아 제당을 짓게 되었다고 적혀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제당의 건평은 6.6㎡[2평]이며, 남남서향이다. 제당의 지붕은 네 모서리에 둥근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다시 둥근 나무 기둥을 세운 기와 맞배지붕이다. 벽은 토석 위에 시멘트를 입힌 벽이며, 문은 여닫이 두 짝으로 된 함석 문이다. 제당 밖의 함석 문 위에는 창건 내력이 적힌 나무 현판이 걸려 있고, 양쪽에 방풍판이 붙어 있다. 제당 안의 제단은 나무판자이고, 위에는 나무 위패 두 개가 놓여 있는데, 왼쪽에 ‘당산지신위(堂山之神位)’, 오른쪽에 ‘산령지신위(山靈之神位)’라 쓰여 있다.
거릿대 제단은 중리 마을에서 조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의 도로변 수로 옆에 시멘트로 된 네모형 제단이다. 거릿대는 오리 형태이며, 음력 1월 14일 낮에 제단에 세우되 오리의 머리 방향을 마을 바깥으로 향하게 한다. 그 이유는 조리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를 쫓고, 이웃 마을에서 곡식을 주워 먹고 조리 마을 쪽으로 똥을 눔으로써 오곡의 풍요를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절차]
두구동 조리 당산제의 절차는 제주 선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제주를 선정하는 시기는 음력 1월 7~8일 무렵이다. 옛날에는 마을의 노인들이 책력을 보아 마을 사람 가운데 생기복덕(生氣福德)을 두루 갖춘 사람을 선정하였으나, 근래에는 마을의 7개 반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각 반에서 제주를 뽑았으며, 현재 몇몇 반이 통합된 후로 4개 반이 돌아가면서 제주를 선정하고 있다. 제주의 선정 기준은 반에서 고령인 사람으로 하되, 당산제 한 달 전을 기준으로 집에 결혼, 초상, 출산 등의 일이 없어야 한다. 노인들 중에 자격에 부합되는 사람이 없을 때는 젊은 사람 중에서 선정한다. 이러한 조건을 맞추어 선정된 제주는 제를 지내는 날까지 매일 목욕재계해야 하고, 궂은일에는 가지 않는다. 제의 가까운 날에 초상이나 출산이 있으면[초상은 5일, 출산은 7일] 그해에는 제의를 지내지 않는다.
제수 종류와 진설은 일반 가정집의 기제사와 같다. 당산제를 지낼 때 이전에는 사흘 전에 금줄과 황토를 준비하였으나, 지금은 당산제 날인 1월 14일 아침에 제주와 집사가 청소를 하고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린다. 자정이 되면 당산제와 거릿대제의 순서로 제사를 지낸다. 당산제를 지낼 때는 먼저 산신위와 당산 할매의 제단에 동시에 제수를 진설한다. 이때 산신위의 제수는 제단 왼쪽에 별도로 차린다. 예전에는 산신에게 한 번 술을 올리고 두 번 절하는 것으로 제의를 치르고, 다음으로 당산 할매에게 세 번 술을 올리고 여섯 번 절했다. 요즘은 산신과 당산 할매에게 똑같이 세 번의 술을 올리되, 1번 씩 번갈아 가며 올린다. 다음으로 마을의 태평을 기원하는 이령수[신(神)에게 말로 읊조리면서 소원을 비는 행위]를 외고, 마지막으로 소지(燒紙)를 올리고 제의를 끝낸다. 참석자는 제주, 집사 외 4~5명 정도이다.
[부대 행사]
음복은 두구동 조리 당산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가볍게 한 후, 마을 회관에서 마을 사람들과 같이한다. 제주는 당산제 후에도 약 3개월의 금기 기간을 가지며, 이때도 궂은일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현황]
두구동 조리 당상제의 경비는 ‘제기돈’이라 일컫는다. 옛날에는 제우답이 있어서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경비를 삼았으나 요즘은 각 가정으로부터 제기돈을 추렴하여 사용한다. 경비는 대략 50만 원 정도가 든다. 이전에는 제주에게 보수가 없었으나, 요즘은 목욕비로 10만 원 가량을 준다. 조리 마을은 현재 행정 구역상 두구동 6통으로 되어 있으며, 번화가와 인접한 지역임에도 당산제와 당집이 그대로 전승 보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