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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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根圭 |
영어음역 | Gim Geungyu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41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종세 |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약학자이자 기업인.
[가계]
김근규(金根圭)는 1914년 12월 24일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412번지이고, 이곳에서 거주하며 부인 황월선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김근규는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29년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동래고등보통학교 1학년 시절 전라남도 광주[현 광주광역시]에서 일어난 항일 학생 운동을 목격했지만 별다른 동요 없이 학업에 매진하였다. 이후 일본의 동경약학전문학교에 진학하여 약리(藥理) 등의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1938년 4월 졸업한 뒤 김근규는 귀국하여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1945년 해방 후 그는 미군정에 참여하였다. 이에 경상남도의 보건 후생, 약무과장을 비롯하여 경상남도 위생시험소장 등의 관직에 있으면서 초창기 약학 행정에 종사하였다. 얼마 후 그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의 초빙을 받아 강사로 지내면서 약학계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과 더불어 1947년 김근규는 계림화학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사장을 역임하였는데, 계림화학주식회사는 주사약, 정제(錠劑) 등 제약으로 유명하였다.
이 시기 한국의 제약업계는 생물학적 제제(製劑)는 물론 항생 물질 제제의 국내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고, 합성 의약 제제가 발달하고 시설이 자동화하는 등의 진전을 보았다. 이러한 가운데 김근규는 부산 제약업계의 선구자, 제약계의 베테랑으로서 사회적 기반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경상남도약사회 회장이자 대한약사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보건사회부 약정국(藥政局) 내 대한약품공업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또한 부산로터리클럽의 회원이기도 하였다. 즉, 김근규는 연구자이자 기업가이며 행정 관료로 활약하면서, 초창기 부산 및 한국 약학계와 제약업계 및 약학 행정에 걸쳐 역량을 발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