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8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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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別傳二四功臣功績碑 |
영어의미역 | Stone Monument for Cherishing the Achievements of 24 War Heroes |
이칭/별칭 | 임진 동래 이십사 공신 공적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 345[안락동 838]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강식 |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 전투 패배 이후 전국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 동래부민 24명을 기념하여 현대에 세운 비.
[건립 경위]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이 함락되고 난 후 동래부민들은 고향을 떠나 각지에서 봉기하고 있던 의병에 참가하여 대일 항쟁을 전개하였다. 동래 부사 이안눌(李安訥)이 1609년(광해군 1) 부임하여 동래부의 여러 노인들에게 문의하여 선무 원종공신 녹권에 실린 66명 중에서 두드러지게 뛰어난 활약을 한 24명을 선정하였다. 이안눌은 관찰사에게 청원하여 24공신에게 요역(徭役)을 면제하고, 문려(門閭)에 정표(旌表)하게 한 뒤 충렬사에 건물을 설치하였다.
이 건물을 별청(別廳)이라 한 데서 유래하여 24공신을 별청 공신(別廳功臣)이라 일컬으며, 별전공신(別典功臣)이라고도 한다. 24공신에게 주어진 증직(贈職)과 성명은 다음과 같다. 병조 참의 김정서(金廷瑞)·정승헌(鄭承憲)·문세휘(文世輝)·정순(鄭順)·김일개(金一介)·김일덕(金一德)·송창문(宋昌文)·김근우(金根祐)·이언홍(李彦弘)·김달(金達)·송남생(宋南生)·황보상(皇甫祥) 등이다.
이들을 분류하면 동래 의병장 김정서 의진에서 활약한 공신이 송창문 외 5명, 김일덕 의진에서 활약한 공신이 김흘(金屹) 외 2명, 독자적인 의병 활동을 한 경우가 정승헌 외 3명, 권응수 군에 종군한 김달, 관(官)을 배반하지 않은 공신이 박인수(朴仁壽) 외 2명, 임진왜란 초부터 적에 부역(附逆)하지 않고 힘써 싸운 공신이 송계남(宋繼男) 외 4명으로 모두 24명이다. 그리고 이들은 신분이 대부분 천인·농민이었는데도 김정서를 중심으로 한 대일 투쟁 전선에서 적극적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이들에게는 임진왜란 이후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증직이 이루어졌다. 1987년 2월 부산광역시에서 건립하였고, 김석희(金錫禧)가 비문을 지었다.
[위치]
별전 24공신 공적비(別傳二四功臣功績碑)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 838번지 충렬사 내에 있다.
[형태]
비석은 꽃무늬 장식의 넓은 형태의 기단부 위에 가로 80㎝, 세로 200㎝ 직사각형의 본체로 되어 있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는 세로로 ‘임진 동래 24공신 공적비(壬亂東萊二十四功臣功績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위쪽에 24공신의 이름과 추증(追贈)된 관직명이 적혀 있고, 아래쪽에는 비석을 세운 유래를 국한문 혼용으로 적어 놓았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동래부는 임진왜란 때 나라의 관문이어서 제일 먼저 침략을 당한 곳이었다. 이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향토를 지킨 의열(義烈)의 덕행을 전하기 위해서 비를 세운다”라고 되어 있다.
[현황]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 충렬사 경내에 잘 보전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때 국가를 위해서 싸우다 순직한 인물들에 대한 후대인들의 추모의 마음을 일깨워 주는 비석이다. 또한 임진왜란 시기에 동래 지역민이 일본군에 다양한 형태로 항전하였음을 알려 주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