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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의 요양 문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609
한자 高麗時代-療養文化
영어의미역 Convalescence Culture of the Goryeo Dynast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전기웅

[정의]

고려 시대 부산 동래 온천의 모습과 휴양 문화.

[개설]

한반도 동남단 끝에 자리 잡은 부산 지역은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에는 따뜻하고 온화하며 여름에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부는 등 쾌적한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바다를 끼고 있어 해수욕을 즐길 수 있고, 질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는 동래 온천해운대 온천 등이 있어 요양과 휴식이 두루 가능하다. 동래 온천은 신라 때 이미 널리 알려져 많은 관리와 문인들이 다녀갔다. 방문자들은 온천에 관한 시를 남기기도 하여 그 풍경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

[기록을 통해 본 부산의 온천 문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에는 명문 거족(名門巨族)이나 문인들의 동래 온천 방문기와 그들이 쓴 시가 전하고 있다. 고려 충숙왕[재위 1313~1330]·충혜왕[재위 1330~1344] 대에 활동하였던 문신 정포(鄭誧)는 오언 율시 「동래 잡시(東萊雜詩)」를 통해 “온천이 예부터 전해 내려와 욕실이 지금껏 남아 있네. 물줄기는 그리 멀지 않은 듯 목욕통의 가장자리가 아직 따뜻하구나. 2년이나 장려[축축하고 더러운 땅에서 일어나는 독기]로 고생하다가 반나절에 시끄럽고 번거로운 것을 말끔히 씻었도다. 이 즐거움을 증점(曾點)[공자의 제자]을 빼고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리”라고 온천욕의 즐거움을 노래하였다.

고려 말의 문인 이규보(李奎報)는 “유항이 수원에 녹아 있다고 믿지 않았고, 도리어 양곡에서 아침 해를 목욕시키는 것인가 하였네. 땅이 외져서 양귀비가 더럽히는 것을 면하였으니, 길손으로 잠시 멱 감아 보면 어떠하리”라고 읊었다. 이 무렵의 동래 온천은 자연 용출 온천으로, 사람들은 돌로 만든 욕조에서 목욕을 하였고, 항상 물이 넘쳐흘렀으며, 온천수에서는 유황의 냄새가 났던 것 같다. 그 밖에도 충선왕[재위 1308~1313] 대의 박효수(朴孝修), 공민왕[재위 1351~1374] 대의 학자 정추(鄭樞) 등 많은 문사가 찾아와 휴양하며, 온천의 정취를 시가로 남겼다. 고려 사람들에게 부산의 온천은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안정을 주는 안식처이자 휴양지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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