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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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影島區-文化遺産 |
영어의미역 | Cultural Assets of Yeongdo-g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영도구 |
시대 | 선사/선사,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이남식 |
[정의]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부산광역시 영도구의 주요한 문화유산.
[개설]
부산광역시 영도구에는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여 신석기 시대부터 현대까지의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부산광역시에는 2011년 4월 말 현재 국가 지정 문화재 53점 및 등록 문화재 10점, 부산광역시 지정 문화재 175점과 문화재 자료 57점이 있는데, 영도구에는 부산의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적은 문화재가 있다. 영도구의 지정 문화재로는 국가 지정 문화재인 명승과 사적이 각 1점, 부산광역시 지정 문화재인 유형 문화재가 3점, 문화재 자료가 1점 있고, 이 밖에 지정되지 않은 문화유산이 30여 점 정도 있다.
[사적과 명승]
사적 제266호인 부산 동삼동 패총(釜山東三洞貝塚)은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해안 일대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1930년대부터 2006년까지 10여 차례 이상 조사되었으며,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연구의 기준이 되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독무덤[옹관묘]이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영선동 조개더미, 청학동 조개더미, 조도 조개더미, 동삼동 상리 조개더미 등의 유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소멸되었다.
부산 영도 태종대(釜山影島太宗臺)는 『동래부지(東萊府誌)』 고적(古跡) 조에 의하면 신라 태종 무열왕이 활을 쏘아 과녁을 맞힌 곳이므로 이름을 태종대(太宗臺)라 하였으며, 가뭄이 든 해에는 기우제를 올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도 해안의 동남쪽에 위치하는 부산을 대표하는 명승지로 2005년 11월 1일에 명승 제17호로 지정되었다. 기암절벽과 울창한 수림, 굽이치는 파도가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태평양으로 시원스럽게 트인 바다의 조망이 일품이다.
[부산광역시 지정 문화재와 기념물]
영도구의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 문화재는 4점으로 모두 영도구 신선동에 있는 복천사(福泉寺)에 소장되어 있다. 「복천사 지장 시왕도(福泉寺地藏十王圖)」[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61호]는 화기(畵記)를 통해 광서(光緖) 18년인 1892년(고종 29)에 경기도 과천 관악산 관음사(觀音寺)에서 금어 덕월(德月), 응륜(應崙) 등 10여 명이 관여하여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복천사 아미타 극락회상도(福泉寺阿彌陀極樂會上圖)」[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62호] 역시 화기를 통해 1892년 경기도 과천 관악산 관음사에서 금어 덕월, 응륜 등 10여 명이 관여하여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는 작품으로, 「복천사 아미타 극락회상도」와 「복천사 지장 시왕도」는 동일 화승에 의해 동일한 시기에 조성된 불화이다.
『복천사 조상경(福泉寺造像經)』[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65호]은 현존하는 여러 판본 가운데 초기 내용과 모습을 지니고 있어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뿐 아니라,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책으로 서지학적으로도 매우 귀중한 문화재로 평가된다. 복천사에 소장되어 있는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66호]는 1579년(선조 12)에 지리산 신흥사(新興寺)에서 간행한 목판본이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선원제전집도서』의 초기 형태를 보여 주는 책으로 우리나라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뿐 아니라, 간행 연대도 임진왜란 이전으로 오래되어 서지학적으로도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자료이다.
「복천사 석가 영산회상도(福泉寺釋迦靈山會上圖)」[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35호]는 화기를 통해 1921년 화승 양완호(梁玩虎)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는 작품으로, 1924년 양완호에 의해 제작된 「연등사 석가 영산회상도(燃燈寺釋迦靈山會上圖)」[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33호]와 매우 흡사하며, 화풍이 뛰어난 작품이다. 「복천사 석가 영산회상도」는 제작 연대는 다소 떨어지나 섬세함이 돋보이는 수작일 뿐 아니라, 20세기 초 부산·경상남도 지역에서 활동한 수화승 양완호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영도구의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로는 영도 대교(影島大橋)[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6호]가 있다. 영도 대교는 1932년 3월에 착공하여 1934년 11월에 개통된 길이 214.7m, 폭 18.3m 규모의 우리나라 최초의 연륙교(連陸橋)이다. 일제가 대륙 침략을 위한 보급 및 수송로 구축의 일환으로 건설하였는데, 1966년 9월 증가하는 차량 통행으로 인해 도개 기능이 멈추었다.
[비지정 문화재]
송덕비는 절영진(絶影鎭)과 관련된 것으로 제3대 행첨사(行僉事) 임익준(任翊準)의 송덕비 2기와 제6대 행첨사 신응균(申膺均)의 송덕비 1기, 순상국(巡相國) 이호준(李鎬俊)의 송덕비 1기가 있다. 성터로는 동삼동 왜성 터[東三洞倭城址]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부산의 자성대(子城臺)를 구축하고 그 부하에게 명하여 쌓은 것이라고 한다. 부산 왜성의 단성(端城)인 추목도 성터[椎木嶋城址]로 추정된다. 민속 신앙과 관련된 것으로는 청학동 할배 당산제, 청학동 조내기 당산제[청학동 할매 당산제], 신선동 산제당(新仙洞山祭堂)과 신선동 아씨당 당산제(神仙洞阿氏堂堂山祭), 동삼동 상구룡 당산제(東三洞上駒龍堂山祭), 동삼 2동(東三二洞) 당산(堂山) 할배당과 할매당, 동삼동 별신굿(東三洞別神㖌) 등이 있다.
이외에 영도구에는 주로 현대에 세워진 기념비가 상당히 많이 있다. 도개식 영도 대교 기념비(跳開式影島大橋記念碑), 영선동 조개더미 기념비[瀛仙洞貝塚記念碑], 영도 전차 종점 기념비(影島電車終點記念碑), 한국 근대 조선 발상 유적지 비(韓國近代造船發祥遺跡地碑), 유치환 시비[청마시비], 영도 대풍포 매축 기념비(影島待風浦埋築記念碑), 선구자 시비, 의지의 꽃길 기념비, 김소운 문학비, 효도 권장비, 한찬식 시비, 박진두 송덕비(朴震斗頌德碑), 효자 고(故) 주봉우 현창 기념비, 태종대 유원지 비, 의료 지원단 참전 기념비(醫療支援團參戰記念碑), 부산 시민 헌장비, 순직 선원 위령탑(殉職船員慰靈塔), 6·25 참전 영도 유격 부대 유적비, 순직 장병 추모비(殉職將兵追慕碑), 자연 보호 헌장비(自然保護憲章碑), 북양 개척자비(北洋開拓者碑), 영도 찬가 기념비, 현인 노래비 굳세어라 금순아 등이 있다.
[특징과 의의]
영도구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유산들이 있으며, 각각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한일 간의 교류 거점이나 관방(關防)을 보여 주는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이외에도 어업을 주로 하는 섬 지역의 특성상 다양한 당집들이 남아 있어 민간 신앙의 흔적을 보여 준다. 유형으로 남아 있지는 않으나,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으로 신라 시대 이래로 목장(牧場)이 설치되어 말의 산지로서 각종 기록에 그 이름을 남기고 있는데, 후백제 견훤(甄萱)이 절영도(絶影島) 명마를 고려 태조 왕건(王建)에게 선물하였다고 전한다. 개항 이후에는 영도 대교 등 일본인 및 일본의 한국 지배와 관련한 많은 근대 시설물이 들어섰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6·25 전쟁 등의 시련을 겪으면서 영도가 가지는 문화적 정서가 담긴 유산도 많이 존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