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8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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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福泉寺釋迦靈山會上圖 |
영어의미역 | Sakyamuni Platform Painting, Pokch’onsa |
이칭/별칭 | 「복천사 석가 설법도」,「복천사 영산회상탱」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부산광역시 영도구 산정길 41[신선동 3가 산6]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은경 |
[정의]
부산광역시 영도구 신선동 복천사에 봉안된 일제 강점기의 석가 영산회상도.
[개설]
복천사석가영산회상도(福泉寺釋迦靈山會上圖)는 복천사 옛 대웅전의 석가여래 좌상 뒤편 후불벽 전면에 봉안된 후불탱화이다. 화기(畵記)를 통해 복천사석가영산회상도가 1921년 12월 동래군 명장리 석금대에 봉안되었고, 증명 비구 혜명(慧明), 금어 완호(玩虎), 시찬(施讚) 등이 관여하였음을 밝히고 있어, 1921년 조성된 이후 어느 시기에 복천사로 이안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2005년 12월 27일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복천사석가영산회상도의 크기는 세로 125.7㎝, 가로 261.0㎝로 옆으로 긴 장방형을 이루며, 면 바탕에 채색을 베푼 작품이다. 도상 구성은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크게 그리고, 그 양쪽으로 권속들을 횡으로 열을 지워 배치하였다. 앞쪽 열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포함하여 보살상 7위와 여래형 1위를 좌우 대칭으로 배치하였고, 그 뒤쪽에는 황색의 채운 속에 십대 제자를 각각 5위씩 좌우 일렬로 나타내고, 사자왕과 상왕을 묘사하였다.
보살상 앞 쪽에 본존을 향해 두 손을 모아 무릎을 꿇고 배례하는 천부상 2위를 배치하고, 이들 바깥쪽으로 원형 광배를 배경으로 의자에 걸터앉은 모습의 사천왕상 2위를 묘사하였다. 이 사천왕상과 대응해서 화면 가장 위쪽 가장자리에 역시 원형 두광을 구비한 사천왕 2위를 배치하였다. 채운에 둘러싸인 본존 두광 양측에는 용왕과 용녀를 작게 묘사하였다.
[특징]
완호는 1920년을 전후한 시기에 유사한 도상 및 화법을 지닌 여래 후불탱을 연작으로 제작하였는데, 복천사석가영산회상도도 그중 하나이다. 복천사석가영산회상도와 유사한 도상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으로는 통도사 사명암[1917], 청량사[1918], 연등사[1924], 범어사 계명암[1927] 등에 봉안된 여래 후불도가 있다.
이들 작품은 화면 본지의 크기가 세로에 비해 가로 폭이 넓은 장방형의 중형급 불화로 근대 이후 건립된 전각의 후불 벽면의 크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러한 화면 크기 때문에 도상을 횡으로 정연하게 일렬로 배치하였으며, 화면 중앙에 위치한 여래상을 중심으로 화면 아래쪽에 원형 녹색 두광을 갖춘 보살상의 신체를 가능한 한 드러내어 배치하고, 위쪽에 십대 제자를 비롯한 권속들의 도상을 축소하여 표현하였다. 또한 화면 네 모서리의 공간에는 사천왕상 혹은 금강상과 같은 외호신을 빈틈없이 배치하여 구도상 안정감을 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복천사는 근대 부산의 범어사 및 영남 지방의 대불모로 활약한 금어 완호에 의해 중창된 사찰이다. 완호의 작품들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전통 불화를 계승하면서 채색과 문양 표현에 있어서 섬세한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복천사석가영산회상도는 조선 후기 불화 제작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연장선상에서 부산·경상남도 지역에서 불모로 활약하였던 완호의 작품 가운데 화격이 뛰어난 석가영산회상도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