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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523
한자 神仙洞阿氏堂堂山祭
영어의미역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of Assidang in Sinseon-dong
이칭/별칭 신선동 산제당 아씨할매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부산광역시 영도구 신선동 산3-6
집필자 김승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 신앙|동제
의례시기/일시 음력 1월 14일 자정|음력 9월 14일 자정
신당/신체 제당|영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2년연표보기 - 제당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5년 8월 19일~12월 3일(음력) - 개축 수리
의례 장소 아씨 할매당 - 부산광역시 영도구 신선동 산 3-6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영도구 신선동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신선동 아씨당 당산제는 음력 1월 14일과 9월 14일 자정에 부산광역시 영도구 신선동 산3-6번지에 있는 제당에서 1년에 두 번 마을의 안과태평과 소원 성취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신선동 산제당 아씨할매제’라고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아씨당(阿氏堂)은 본래 하씨 신당(河氏神堂)이다. 하씨 신당의 원래 위치는 1908년에 설립된 사립 옥성학교(玉成學校) 옆의 수목 가운데 있었는데, 이 학교가 폐교되고 1941년에 영도공립보통학교[현재 영도초등학교]를 세우면서 학교 부지 확충을 위해 하씨 신당을 헐게 됨으로써 현 위치인 신선동 계곡으로 옮기게 되었다. 하씨 신당의 내력은 서대신3동시약산당산제운영위원회의 「시약산 산제당 약사(蒔藥山山祭堂略史)」에 의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동학의 교주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1824~1864]의 여동생이 동학란에 피신하여 시약산에서 당집을 지어 살았는데, 최제우의 조카뻘 되는 최씨와 그 부인인 진양 하씨가 와서 최제우의 여동생을 시봉하였다. 하씨가 19세기 말엽에 영도 고갈산(枯渴山)[지금의 봉래산] 중턱으로 가서 당을 세우고 살다가 죽으니, 이에 주민들이 그 당을 ‘하씨 신당(河氏神堂)’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뒷날 ‘아씨 할매당’으로 명칭을 바꾸어 부르게 되었으며, 현 위치로 옮긴 후 고씨 신당[할배당]을 세웠고, 그 뒤 고씨 신당 뒤 바위 가운데에 산신상[천왕장군신상]을 세웠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1942년에 세운 제당들이 낡아 1995년 음력 8월 19일부터 개수를 시작하여 12월 3일에 마쳤다. 아씨 할매당은 고씨 할배당의 서북쪽으로 15m 지점에 있다. 당의 건물 면적은 15.2㎡[4.6평]로 기와 우진각 지붕에 벽은 블록을 쌓아 시멘트로 마감하였다. 문은 정면 오른쪽에 여닫이 외짝 나무문과 왼쪽에 태극 도형이 그려진 여닫이 두 짝 나무문이 달려 있으며, 앞 추녀 끝에 흰 플라스틱 차양을 붙였다.

제단은 77㎝의 높이에 두께 2㎝의 화강암 대리석을 ⊓형으로 놓았는데, 제단 위에는 여신도가 끼어 있는 유리 액자가 두 개 걸려 있다. 오른쪽이 ‘삼신 제왕 할매’이고, 왼쪽이 ‘아씨 할매’인데 두 할매의 제단 아래에는 각각 불전함이 놓여 있다. 두 제당의 주위에는 출입구를 제외하고는 돌담을 직사각형으로 쌓아 놓았다.

[절차]

1. 동제 준비

1) 제관 선정: 제관은 옛날에는 신선동 마을 회의에서 음력 1월 5일 무렵에 그해의 생기복덕(生氣福德)에 맞고 깨끗한 사람을 지명한다. 선정된 제관이 제의를 보좌할 유사(有司) 3명을 선발하여 제의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1992년부터 상주하는 당주[장운표, 남, 52세]가 마을 사람 중 제의 당일에 협력하며 깨끗한 사람으로 제관 2명[아헌관·종헌관]과 축관 1명을 선정하여 제의를 행한다.

2) 제비와 제수 준비: 1980년도까지만 하여도 당제에 소요되는 제비를 집집마다 추렴을 하였으나, 현재는 아씨당과 할배당에 보살들이 와서 시주하는 돈으로 제수를 장만한다. 당주는 제의 10일 전에 그가 거처하는 아씨 할매당 아래쪽에 있는 요사채에 제주(祭酒)를 담고, 제의 이틀 전에 좋은 제수를 자갈치 시장에 가서 사되 제수의 값은 깎지 않는다.

제수에는 닭고기와 쇠고기는 쓰지 않고 까만 수퇘지를 한 마리를 구입해 잡아서 5각[앞다리 2, 뒷다리 2, 머리와 몸통]을 내어, 제의 때 할배상과 할매당의 아씨 할매상에 앞다리 각 1개, 삼신 제왕상과 용왕상에 뒷다리 각 1개, 산신상에 머리와 몸통을 바친다. 그 외의 고기로는 민어·조기·납새미·붉돔·옥돔·건어포[명태포·문어포]와 시루떡 3종[백설기·찰떡·팥떡], 나물[콩나물·도라지·고사리·무·배추·미나리]과 과일[대추·밤·곶감·배·사과·귤·바나나] 그리고 약과·강정 등을 쓴다. 제수의 장만은 제의 당일 산제당과 관계있는 보살들이 와서 한다.

2. 동제 진행

제의 때가 되면 당주, 제관, 축관은 흰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참례한다. 제물 진설은 아씨 할매 앞의 앞줄에 나물탕·메·백짐시루떡 등을, 둘째 줄에 돼지고기·탕·찹쌀 시루떡 등을, 셋째 줄에 민어·조기·납새미·옥돔·콩나물·도라지·고사리·무채·배추전·미나리전·팥시루떡 등을, 넷째 줄에 건어포·대추·밤·곶감·배·술잔·사과·귤·바나나·약과·강정 등의 순서로 차린다. 촛불은 첫째 줄 양쪽에, 향로는 제단 아래 향로대에 놓는다.

제의 과정은 유교식으로 촛불을 켜고 제수를 진설한 뒤 당주가 초헌관이 되어 향불을 피우고, 술을 올린 뒤 일동이 재배한다[일반 기제사는 유사로부터 술잔을 받아 술을 반쯤 부어 주면 모사에 세 번 붓고 빈 잔을 올리는데, 여기에서는 바로 한 제관으로부터 술잔을 받아 술을 가득히 채워 모사에 붓지 않고 바로 올린다]. 일동의 재배가 끝나면 밥뚜껑을 열고 수저를 꽂고 축관이 축문을 읽는다.

축문 읽기가 끝나면 아헌관이 술잔을 올리고 재배하고, 그 다음 종헌관이 술잔을 올리고 재배하고는 잠시 있다가 밥뚜껑을 닫고 일동이 재배한 뒤에 소지(燒紙)를 올리는데, 먼저 아씨 할매와 당주와 마을 사람들의 순서로 한다. 이후 제상을 물린다. 끝으로 잡귀 잡신을 위해 산제당 안의 요사채에 살고 있는 보살이 작은 상에 밥과 나물·고기를 약간 준비하여 ‘산제당’이라 쓰인 일주문 아래에 갖다 놓음으로써 모든 제의는 끝난다.

[부대 행사]

제의가 끝나면 당주를 비롯한 제관과 제수를 장만하는데 도운 보살들이 요사채에 모여 같이 음복을 하고, 남은 제물은 신선동 경로당과 복지 회관에 보낸다. 금기 생활은 당주의 경우 제의가 드는 1월 한 달과 9월 한 달이며, 제관은 제관으로 지정된 날로부터 제의가 끝나는 날까지이다.

[현황]

신선동 아씨당 당산제는 민속 신앙에서 벗어나 개인의 암자와 같이 변하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 당산과는 달리 개인적 기도처가 되어 매일 보살[신도]들이 출입하고, 아씨 할매당의 불전함(佛前函)에 시줏돈을 넣고 있다. 제의 절차에 있어서도 일반적으로는 산신제, 당산제, 거릿대[솟대]제 또는 산신제와 당산제를 합하여 제의를 베풀고 난 후 거릿대제를 지내는 데 반해, 이 산제당에서는 당산제, 산신제, 용왕제의 순으로 제의를 모신다. 고씨 할배제와 아씨 할매제를 분리하여 제사를 올리고, 산신제가 뒤에 행해지며, 거릿대제 대신 용왕제가 끝에 행해지는 것이 부산 지역의 여느 동제와 다른 점이다.

현재 신당의 현판이 ‘아씨 할매당[阿氏堂]’으로 되어 있어 아씨 할매당으로 호칭하고 있으나, 신당의 연원 및 변천이나 제문의 내용을 보아 하씨당(河氏堂)으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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