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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362
한자 蒔藥山山祭堂祭
영어의미역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Siyaksan Mountain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3동 683
집필자 김승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 신앙|동제
의례시기/일시 음력 10월 14일 자정
신당/신체 산제당|영정
시작 시기/일시 1860년연표보기 - 산제당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8년 - 현 산제당 신축
의례 장소 산제당 -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3동 683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3동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시약산 산제당제는 음력 10월 14일 자정에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3동 683번지에 있는 산제당에서 국태민안과 마을의 풍농·풍어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1860년에 건립된 산제당(山祭堂)은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1824~1864]의 여동생이 세웠다고 전한다. 산제당에 있는 ‘서대신3동 운영위원회’의 「시약산 산제당 약사(蒔藥山山祭堂略史)」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산제당은 1860년 초여름에 축조되었다. 전래에 의하면, 당시 진양에 거주하던 최씨 여인이 시약산 산신령의 현몽으로 이곳을 점지 받아 몸소 제단을 설치하고 평생을 기도했다고 한다. 그 뒤 세상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최 여인은 본래 수운 대사 최제우 선생과 남매간이었다고 한다. 최제우 선생이 동학(東學)을 창시하고 포교 활동을 하여 조정의 탄압을 받게 되자, 최 여인은 이곳에 은둔했다. 세월이 흘러감에 친가의 조카뻘 되는 최씨와 그의 부인[진양 하씨] 내외가 고모 되는 최 여인을 보살펴 주다가 고모의 치성에 감동하여 유지를 계승코자 영도 고갈산(枯渴山)[봉래산] 기슭에 별도로 신당을 지어 기도했는데, 후에 이 당을 ‘하씨(河氏) 신당’[영도구 신선동의 아씨 신당]이라 일컫게 되었다.

최 여인이 죽자 서대신동 사람들이 자진 합력하여 산신당을 개축 건립하여 ‘시약산 산제당’으로 이름 짓고, 세 분의 영정[수운대사 영정, 수운대사 합부인 진양 하씨 영정, 최씨 여인 영정]을 봉안하여 가신 분들의 넋을 위로하고 서대신동의 안과태평을 위한 산신제와 시향제(時享祭)를 모셔 왔다고 한다. 현재의 산제당 건물은 1978년에 신축하고 단장한 것이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제당(山祭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돌담 안에 두 건물 중 왼쪽 것이 산제당이다. 지붕은 기와 우진각이며, 벽은 블록을 쌓아 시멘트로 마감하였고, 문은 여닫이 두 짝 나무문이다. 제단은 나무 제단으로 위패는 없고, 영정이 액자 속에 들어 있는데, 왼쪽으로부터 최제우 여동생, 최제우[산신도], 최제우 부인 순서로 걸려 있다.

[절차]

서대신3동 시약산 산제당 운영위원회에서 제주를 선정하여 제사를 모셨으나, 2006년에 서대신동이 재개발 구역으로 확정됨에 따라 운영위원회는 해체되고, 현재는 이수경[여, 66세]이 동네의 부인[보살]들과 합심하여 제사를 올리고 있다. 제비는 신당에 개인 치성을 하러 와서 내어놓는 시주금으로 마련하고, 제물은 부평동 시장에 가서 구입한다.

절차는 세 분의 영정 앞에 메와 국[무·두부·오징어를 넣어 끓인 탕]을 각각 진설하고 나머지 제물은 맨 앞줄에 대추·밤·배·감·사과·바나나·수박·참외를 놓는데, 10월이라도 수운이 수박과 참외를 좋아했기 때문에 꼭 올린다고 한다. 둘째 줄에는 조기구이·민어구이·돼지머리·꽃게맛살부침·고사리나물·콩나물·도라지나물 등을 놓는다. 그리고 떡으로는 흰시루떡·팥시루떡·콩시루떡을 제상에 놓는다.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제주인 이수경이 분향·재배하고, 이어 각 영정 앞에 헌주하고 다시 재배한다. 그리고 밥 위에 숟가락을 꽂고 난 뒤[揷匙正箸], 손을 비비면서 국태민안과 풍요를 기원한다. 잠시 뒤 밥뚜껑을 닫고[撤匙覆飯], 이어 최제우와 그 부인 및 누이를 위한 소지(燒紙)를 한 장 올리고 나면, 참례자들이 각자 소지를 올린다.

[현황]

현재 시약산 산제당제는 제당이 서대신동 재개발 구역 안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의 노력으로 계속 유지되고 있다. 시약산 산제당의 창건 연도인 1860년은 최제우가 시천주(侍天主)의 사상을 핵심으로 한 ‘인내천(人乃天)’의 교리를 완성하고 동학을 창시한 해이다. 따라서 이때 그 누이 최씨가 시약산의 산제당을 동학의 접소(接所)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 최제우의 조카뻘 되는 최씨의 아내 하씨가 고갈산 밑에 산제당을 세운 점으로 보아, 시약산의 산제당은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제당인 만큼 길이 보존할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 『부산의 당제』(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5)
  • 인터뷰(시약산 당산제 제주 이수경, 여, 66세, 2011.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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