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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동 당산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338
한자 水營洞堂山祭
영어의미역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Suyeong-dong
이칭/별칭 수영동 무민사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성로3번길 16[수영동 507-9]
집필자 황경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 신앙|동제
의례시기/일시 음력 1월 15일 오전 5시
신당/신체 제당|최영 장군 영정|위패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3년 5월연표보기 - 무민사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4년 1월연표보기 - 무민사 중건
의례 장소 무민사 -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507-9

[정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서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수영동 당산제는 음력 정월 대보름 새벽 5시에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507-9번지에 있는 무민사(武愍祠)에서 1년에 한 번 마을 수호신에게 동네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수영동 무민사’라고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최영(崔瑩)[1316~1388] 장군을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수영동 당산제를 지내는 제당이 ‘무민사’이다. 수영동에서 무민사를 세워 제의를 베풀기 시작한 시기는 광복 이후로 그 연원이 깊지는 않다. 구술 자료에 따르면 광복 전에는 무민사가 건립되지 않았다. 현재 무민사가 세워진 자리는 마을에 거주하던 한 강신 무녀의 집이었다. 강신 무녀가 오두막을 짓고 거주하면서 집 뒤에 있는 큰 바위를 최영 장군이라 칭하고, 자신의 집에 최영 장군의 영정을 걸어 두고 무업을 해왔다 한다.

이후 강신 무녀가 죽고 난 뒤 마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우환이 자주 생기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 마을 주민이었던 고(故) 태말준(太末俊)이 강신 무녀가 살던 오두막집을 최영 장군의 제당으로 삼아 당산제를 베풀기 시작하였다. 이를 계기로 최영 장군을 당산 신으로 좌정시켜 마을 공동 제의를 베푸는 전통이 자리 잡게 되었고, 1973년 5월 오두막집을 허물고 지금의 무민사를 세웠다 한다.

그 이후 제당이 세월 따라 낡고 허물어지자 마을 유지의 모임인 ‘광일 심붕회’에서 1974년 1월에 대들보는 그대로 두고 제당을 중건하였다. 무민사 중건에 사용한 건축 자재는 금정산의 한 폐사 암자의 것을 가져와 사용하였다고 전한다. 이 마을에서는 당산제를 베풀 때 제의 말미에 백산 아래에 위치한 팽나무 밑에서 제의를 베푸는데, 이 장소는 옛날 최영 장군이 왜구를 격퇴하고 지나가는 길에 쉬었던 장소라 전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무민사는 옛 수영성 동문 밖 왼편의 큰 바위 앞에 위치해 있다. 제당의 형태는 기와 맞배지붕에 블록을 쌓아 시멘트로 마감한 한 칸 건물이다. 제당의 출입문은 여닫이 두 짝 나무문이며, 문 중앙 위쪽에 태극 도형이 그려져 있다. 문 위에는 ‘무민사(武愍祠)’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제당 안에는 나무로 만든 직사각형의 제상이 놓여 있으며, 제상 중앙에 ‘최영장군신위(崔瑩將軍神位)’라 쓴 나무 위패가 놓여 있고, 그 앞으로 향로 1개, 촛대 2개, 정화수 그릇 1개, 술잔 2개, 퇴주 그릇 1개가 얹혀 있다. 제상이 놓인 뒷벽 위 도리에는 최영 장군의 영정이 유리 액자에 담겨 걸려 있다. 제당 안 왼쪽 벽에는 예전의 최영 장군 영정이 걸려 있고, 그 밑으로 남자 두루마기 한 벌과 한복 한 벌이 걸려 있으며, 그 밑으로 흰 고무신 한 켤레가 놓여 있다. 제당 오른쪽 벽의 합각 위치에는 나무판으로 만든 ‘최영 장군 사당 중건 기금 기록(崔瑩將軍祠堂重建基金記錄)’이 붙어 있다.

제당 주위에는 뒤편에 큰 바위가 있다. 바위 주위에는 블록 담이 직사각형으로 둘러져 있고, 동남쪽에 여닫이 두 짝 철문이 설치되어 있다. 철문 오른쪽 옆에는 ‘무민공 최영 장군 사당(武愍公崔瑩將軍祠堂)’이라 쓴 현판이 세워져 있다. 거릿대신을 모시는 제의 장소는 백산 밑에 있는 팽나무이다.

[절차]

수영동 당산제를 주관하는 제주는 예전에 수영고적민속보존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던 「수영 야류(水營野遊)」 수양반 기능 보유자인 태덕수가 전담했으나, 근자에는 무속인이 맡고 있다. 제주는 제의를 지내기 3일 전부터 시작하여 제의를 지낸 후 보름간 금기를 행하는데, 남의 길흉사에 참석하지 않고, 살생을 하거나 동물의 사체를 보는 등 부정을 가릴 뿐만 아니라 목욕재계하여 항시 정갈한 몸가짐을 행한다.

제의 절차는 예전에는 먼저 제당에서 최영 장군제를 지낸 뒤 용왕제, 거릿대 순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근자에는 간소화되어 제당에서 최영 장군제만 모신다. 제의에 올리는 제물의 종류는 메, 눈이 붙은 마른 명태, 찐 대어, 부침개, 나물, 과일, 탕, 술 등이며, 제물의 진설 방식은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대동소이하다.

당산제의 제의 절차 역시 기제사와 비슷하나, 제의 말미에 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소원 성취를 기원하기 위해 축원하며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먼저 제당에 모신 신을 위해 올린 다음 마을 주민 순으로 행한다. 소지할 때 재가 하늘 높이 잘 오르면 그해 길할 것으로 여기고, 혹 그렇지 못하면 그해 운세가 흉할 것으로 속신한다.

제의가 끝나면 제물의 일부를 떼어 내러 따라왔을 지도 모를 잡귀 잡신을 풀어먹이는데, 이를 시석이라고 한다. 제의가 모두 끝나면 마을의 유지들과 나이가 연만한 노인들이 함께 음복한다. 당산제에 올렸던 제물은 신성한 것으로 가정에 길흉사가 있거나 부정이 있는 이는 음복을 삼간다. 당산제를 지낸 후에는 달리 부대 행사가 없다.

[현황]

수영동 당산제에 소요되는 경비는 수영구청에서 일부 보조하고, 나머지는 제의를 담당한 무속신이 조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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