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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318
한자 宋伯殉難碑
영어의미역 Stone Monument for the Sufferings of Song back
이칭/별칭 송공백 순난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시장길 27[복천동 229-7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정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이전 시기/일시 1742년 - 이전
보수|복원 시기/일시 1766년연표보기 - 이설
보수|복원 시기/일시 1767년연표보기 - 이설
보수|복원 시기/일시 2005년연표보기 - 보수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송백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2년 6월 26일 - 송공단이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될 때 송공단의 부속 단비
현 소재지 송공단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229-78지도보기
성격 비|순난비
양식 비|순난비
관련인물 비|순난비
재질 비|순난비
크기 비|순난비
소유자 비|순난비
관리자 비|순난비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기념물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송공단에 있는 조선 후기 송백(宋伯)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송백[?~1592]은 임진왜란 당시 동래 부사 송상현(宋象賢)을 모시고 있던 동래부의 향리이었다. 외적의 침입으로 동래읍성이 함락되기 직전 송상현 주변에 있다가 적들이 앞으로 다가오자 격렬한 싸움 끝에 순직하였다. 송백 순난비(宋伯殉難碑)는 17세기 농주산 전망 제단에 그가 모셔질 때 건립된 후 송공단 건립과 함께 이전되었다. 영조 때 송백에게는 예빈시 주부(禮賓寺主簿)를 추증하였다.

[건립 경위]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 부사 송상현, 부산진 첨사 정발(鄭撥)을 제사 지내기 위해 17세기 전반쯤에 동래읍성 밖 농주산에 전망 제단을 설치하고, 양산 군수 조영규(趙英圭) 등과 순절한 여러 사람들을 차례로 더 모시게 될 때 건립된 것이 아닌가 한다. 1742년(영조 18) 농주산 전망 제단을 옮겨 송공단을 건립할 때 이전하였고, 1766년(영조 42) 송공단 보수 때는 서쪽 2단으로 옮겨졌으며, 1767년(영조 43) 보수 때는 서쪽 2단에 두었다.

[위치]

송백 순난비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229-78번지 일원에 있는 송공단 안에 있다.

[형태]

직육면체의 단(壇) 위에 사각형의 좌대(座臺)를 놓고, 그 위에 화강암으로 만든 비신(碑身)만을 얹었다. 비신의 머리는 반원형으로 다듬어져 있다. 비의 크기는 높이 78㎝, 너비 29㎝, 두께 12㎝이다. 3기의 비가 있는 단은 가로 253㎝, 세로 91㎝, 높이 61㎝이다.

[금석문]

비석에는 ‘송공 백 순난비(宋公伯殉難碑)’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송백 순난비는 부산광역시 동래구가 소유하여 관리한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조선 시대와 다르게 배치된 채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된 송공단의 부속 단비이다. 2005년에 1767년 때와 같이 바로잡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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