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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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基福 |
영어음역 | Choe Gibo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서부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선화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최기복(崔基福)[1901~1991]은 1901년 12월 28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서부리에서 태어났다. 19세였던 1919년 서울에서 전국으로 확산되던 3·1 운동과 동래 장터 3·1 운동의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이때 최기복은 서울의 모 신문사에 다니던 김수룡(金壽龍)에게 독립 선언서를 받으면서 김도엽(金度燁)·구수암(具壽巖)·권철암(權鐵巖)·이택규(李澤奎)·박공표(朴孔杓)·오기원(吳基元) 등과 함께 기장면 3·1 운동을 준비하였다. 이들은 거사 일자를 기장 장날인 4월 5일 오전 11시로 정하고, 3월 28일 기장면사무소에 근무하는 최창용(崔昌鎔)을 통해 기장면사무소의 등사판과 등사 원지를 빌려 옛 기장 장관청(將官廳) 등에서 독립 선언서를 만들었다.
4월 5일이 되자 최기복은 기장 장터에서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 시위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이어서 4월 8일과 10일, 11일로 이어지는 만세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 군경에 체포되었다. 1919년 6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확정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농촌 계몽 운동과 육영 사업에 힘썼다. 1991년 12월 12일 사망했다.
[저술 및 작품]
『최기복 자서전』[을지출판사, 1990]이 있다.
[묘소]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국립대전현충원 애국 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0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