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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홍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226
한자 姜大洪
영어음역 Gang Daehong
이칭/별칭 강대락(姜大洛)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철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언론인|사회 운동가
성별
본관 진양(晉陽)
대표경력 『동아 일보』 기자
출생 시기/일시 1905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5년 12월 - 『동아 일보』 진영지국 기자
활동 시기/일시 1925년 2월 11일 - 경남사회운동자동맹발기회 준비 위원에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25년 6월 - 진영소작인회대회 실행 위원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25년 12월 25일 - 제3회 경남청년연맹 준비위원회에 진영청년회 대표로 참석, 상무준비위원으로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26년 7월 - 부산노동청년회 집행위원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26년 12월 - 『동아 일보』 부산지국 기자
활동 시기/일시 1927년 12월 - 신간회 부산지회 서무부 위원 및 중앙대의원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28년 2월 - 경남기자동맹 부의장에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28년 6월 - 제3차 공산당 사건으로 검거, 징역3년 선고 받음
활동 시기/일시 1945년 8월 16일 - 경상남도 건국준비위원회 총무부장, 부산치안사령부 총사령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8년 8월 16일 - 신탁통치배격인민대회준비회 총무부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6년 1월 - 민전 부산시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6년 3월 - 남로당 부산시위원원회 위원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9년 11월 - 국민보도연맹 경상남도연맹 사무국장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951년 3월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거주|이주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학교|수학지 동래고등보통학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360지도보기
활동지 『동아 일보』 김해지국 -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활동지 『동아 일보』 부산지국 -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정의]

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언론인이자 사회 운동가.

[개설]

본관은 진양(晉陽). 1905년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에서 태어났다. 호적상의 본명은 강대락(姜大洛)이나, 1925년 12월 『동아 일보』 김해지국 기자 시절부터 강대홍(姜大洪)으로 불렸다.

[활동 사항]

강대홍동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9월 일본 도쿄로 유학을 갔다가 지진으로 되돌아왔다. 이후 고향인 김해시 진영 지역에서 사회 운동[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25년 2월 11일 경남사회운동자동맹발기회 준비 위원, 6월 진영소작인회대회 실행 위원이 되었다. 12월 25일 부산 영남 여관에서 개최된 제3회 경남청년연맹준비위원회에 진영청년회 대표로 참석해 상무 준비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5년 12월 『동아 일보』 기자로 진영지국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1926년 12월부터 1940년 7월까지 『동아 일보』 부산지국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부산지국에 재직 중이던 1926년 7월 부산노동청년회 집행 위원, 1927년 7월 17일 부산청년회 정치문화부원, 12월 4일 부산청년동맹 서무부 위원이 되었다. 또 1927년 10월 『동아 일보』의 부산지국 기자로 재직하던 중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여, 11월 고려공산청년회 경남도책, 조선공산당 경남도당 위원이 되었으며, 12월 29일 신간회 부산지회의 정치문화부원 및 중앙 대의원이 되었다. 1928년 2월 경남기자동맹 부의장이 되었으며, 경남청년연맹 창립 서면 대회에서 검사 위원을 맡았고, 1930년 6월 제3차 조선공산당 검거 사건으로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해방 이후 새로운 국가 건설에 참여할 목적으로 1945년 8월 16일 부산치안대장과 건국준비위원회 경남본부 결성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총무 부장이 되었다. 같은 해 9월에 치안대를 확대 개편한 치안사령부 총사령관과 10월 부산시 인민위원회 위원장에 이어서, 1946년 1월 민주주의민족전선 부산시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약하였다. 같은 해 3월 남조선노동당 부산시당 위원장이 되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인 1949년 11월 국민보도연맹 경상남도연맹 사무국장이 되어 사회주의들의 전향 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6·25 전쟁 중 부산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51년 3월에 발진 티푸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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