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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의 해양 교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081
한자 三國時代-海洋交流
영어의미역 Marine Trade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권덕영

[정의]

삼국 시대 해양을 통해 부산 지역과 여타 지역 사이에 이루어진 교류.

[지정학적 위치]

한반도 동남쪽 바다에 인접한 부산은 일찍부터 해양을 통해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활발하였다. 『삼국지(三國志)』위서(魏書) 왜인전(倭人傳)에 의하면, 지금의 김해 지방에 있던 구야국(狗邪國)은 중국과 일본을 왕래할 때 반드시 거치는 해로상의 요지였다고 한다. 김해 지방이 고대 중국과 한반도 그리고 일본 열도를 잇는 해상 교통로의 요지였다면,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인접한 부산 지역 역시 그에 버금가는 해로상의 요지로 활용되었다.

삼국 시대 부산은 당시 해상 활동이 활발하던 금관가야와 인접하였고, 신라의 수도 경주와는 동해 바닷길 또는 낙동강 수로를 통해 연결되었으며, 중국과 일본 그리고 신라 수도의 관문인 울산항을 왕래하는 선박들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곳이었다. 이러한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하여 삼국 시대 부산 지역은 해양을 통해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활발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부산 지역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하였다.

[일본 및 중국과의 교류]

삼국 시대에 부산과 일본을 잇는 바닷길은 『삼국지』 왜인전에서 소개한 항로가 가장 일반적으로 활용되었다. 즉 대방군(帶方郡)에서 서해와 남해를 거쳐 김해 구야국에 도착한 후 부산 지역을 경유하여 대한 해협을 건너 대마도에 이르고 대마도에서 다시 이키섬[壹岐島]을 징검다리 삼아 동쪽으로 나아가면 일본의 서북쪽 관문인 규슈의 하카다[博多] 만의 후쿠오카[福岡]에 다다른다. 대방군뿐만 아니라 신라와 가야 그리고 백제도 이 바닷길을 통해 일본과 교류했을 터인데, 그 중간에 부산이 자리 잡고 있다.

한편 부산 지역은 중국과의 해양 교류에서도 중간 기착지로서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 시대 신라의 대중국 통교는 황해를 매개로 이루어졌다. 그중에서도 신라가 한강 하류를 점령하기 이전에는 남해 바닷길을 이용해 황해로 나아갔는데,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남해 연안을 따라 황해로 갈 경우 반드시 거쳐야하는 곳이 바로 부산 앞바다였다. 587년(진평왕 9)에 경주에 살던 대세(大世)구칠(仇柒)남해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갔다고 하고, 희강왕 때 왕위 쟁탈전에 패한 김우징(金祐徵)낙동강 하구 황산진에서 배를 타고 남해 연안 항로를 따라 청해진에 갔다고 한다. 이와 같이 그들 역시 낙동강 수로를 따라 부산 혹은 김해로 내려와 남해안을 따라 황해를 거쳐 중국에 가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교류의 흔적]

수영만에 위치한 형변(兄邊)은 신라의 네 곳의 해양 제사처[사독(四瀆)]로 알려져 있는데, 신라 중앙에서 울산을 거쳐 일본 열도나 남해안을 통해 중국으로 해양 교류를 수행할 때 반드시 형변에서 해신(海神)에게 제사를 지내고 가야 하는 중간 기착지였다. 부산 동래 패총에서 출토되는 철 생산의 흔적인 철재(鐵滓)[slag]와 야요이계 토기 통형 동기 등 다양한 외래 유물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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