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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시대의 제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073
한자 三韓時代-祭祀
영어의미역 Ancestral Rites of the Three Han States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집필자 이양수

[정의]

삼한 시대 부산 지역에서 행해진 제사.

[개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제사장인 천군과 그가 다스리는 소도(蘇塗)가 기록되어 있다. 삼한에서는 귀신을 믿었는데, 국읍(國邑)에서 한 사람의 천군을 세워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였다고 한다. 국읍에서 거행한 제사 의식을 제천(祭天)이라고 하였는데, 중국의 제천 의식과 동일하다는 의미는 아니며 사회 정치적인 기능이 중국의 제천 의식과 같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제사의 목적은 정치 경제의 중심지인 국읍의 주도하에 천신에게 제사를 지냄으로써 읍락 간의 결속을 다지고 국읍 주수(主帥)의 정치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5월 모종을 끝내면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밤낮으로 먹고, 마시며, 춤추고 노래를 부른다. 춤추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서로 동작을 맞추어 땅을 밟으면서 몸을 낮추었다가 올리는 춤을 추었다. 반주 소리는 중국의 탁무(鐸舞)와 같다. 10월에 농사일이 다 끝나고 나면 또 이런 놀이를 한다’는 의미이다. 즉 5월과 10월 두 차례 농경의례로서 제사를 지냈음이 기록되어 있다.

[독로국의 제사]

부산에서 삼한 시대의 제사와 관련되는 도구로 점뼈[卜骨]와 본뜬거울[倣製鏡]이 있다. 부산 동래 패총에서 출토된 점뼈는 모두 사슴의 견갑골로 만든 것으로, 뼈의 마디 가까이에 자귀로 잘라 낸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러한 점뼈는 주로 사슴이나 멧돼지의 견갑골을 이용하였는데, 중국의 갑골문과 같이 불로 지져 깨지는 양상을 통해 점을 치는 도구이었다. 부산 복천동 고분군 12호 널무덤[木棺墓]의 경우 본뜬거울을 부장한 예가 있는데, 당시 거울은 지배자의 상징물로서 의례와 관련된 중요한 도구이었다. 즉 천군은 본뜬거울을 가지고 의례를 행하고 점뼈로 점을 쳐서 그해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였다.

부산 독로국(瀆盧國)의 경우에도 이러한 제사 도구는 소국을 운영하는 데 제사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알려 준다. 삼한의 여러 소국과 마찬가지로 독로국도 정치적인 지배자인 주수와 제사장인 천군이 공존하여 제정일치 사회에서 발전된 제정 분리 사회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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