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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127
한자 朝鮮時代-海洋祭祀
영어의미역 Marine Ancestral Rites of the Joseon Dynasty
이칭/별칭 해신제,풍어제
분야 역사/전통 시대,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한태문

[정의]

조선 시대 부산 지역에서 배의 안전 운항이나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던 제사.

[개설]

제사는 신령(神靈)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내는 의식이다. 제사는 대개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행해지는데, 해양 제사는 바로 ‘바다’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행해진다. 조선 시대 부산의 바다는 생활의 공간이자 외국으로 열린 소통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항해술이 그리 발달하지 않은 데다 대부분 무동력선에 의존하던 때라 바다 위에서의 생활은 언제나 예측하기 힘든 위험이 뒤따랐다. 그 결과 어로 작업이나 항해에 있어 안전에 대한 소망은 풍어에 대한 기원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어 지역민은 물론 국가적으로 다양한 해양 제사가 베풀어졌다.

[부산 지역민에 의해 행해진 해양 제사]

바다를 끼고 생활하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조선 시대의 부산 역시 풍어와 어로(漁撈)의 안전을 기원하는 ‘풍어제(豊漁祭)’, 배의 안전과 풍어를 위해 배에서 지내는 ‘뱃고사’,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위하여 용왕에게 지내는 ‘용왕굿’·‘용왕제(龍王祭)’ 등을 지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오늘날 가덕도(加德島)와 기장(機張)에 전하는 해양 제사를 통해 살피면 다음과 같다.

먼저 가덕도의 경우 눌차(訥次) 마을에서는 용왕제가, 대항(大項) 마을에서는 ‘숭어들이 고사’가 베풀어진다. 눌차 마을의 용왕제는 음력 2월 22일에 지내는데 대부분의 용왕제가 그러하듯 불교와 무속의 의식이 복합되어 있다. 의식은 ‘용왕수륙천도제(龍王水陸遷度祭)-물고기 방생 법회-제물과 희생 수장(水葬) 후 비손-사자풀이-거리 시식-제물 떼어 바다에 던지기’ 등으로 이어진다.

대항 마을의 ‘숭어들이 고사’는 매년 음력 2월에 산신(山神)·여서낭·고인(故人)이 된 어로장(漁撈長) 등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그 해 숭어 잡이가 잘 될 수 있게 기원하는 의식이다. 특히 그 해 숭어를 처음 잡았을 때는 여서낭신과 고인이 된 어로장의 제단에 싱싱하고 좋은 숭어 한 마리씩을 바치고 술을 붓고 재배(再拜)한 뒤 이령수[신에게 비손할 때 말로 고하는 일]를 읊고 의식을 마친다.

기장군의 경우는 정기적인 ‘당산제’와 부정기적인 ‘별신굿’이 전한다. 당산제는 산신·당산신·용왕신 등에게 마을의 1년간 편안함과 오곡풍등(五穀豐登) 및 가축의 번식을 기원하는 행사이고, 별신굿은 마을의 평안과 풍어 및 어부의 해상 무사고를 기원하는 의례이다. 특히 별신굿은 해변 마을에서 마을의 형편에 따라 몇 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거행하는 무속 의례로, 부정거리-골매기청좌(請坐)거리-당맞이거리-화해거리-일월거리-세존거리-성주거리-조상거리-천왕거리-군웅거리-심청거리-손님거리-계면거리-용왕거리-거리굿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에 의해 행해진 해양 제사]

국가에 의해 행해진 해양 제사로는 통신사(通信使)가 일본을 향할 때 베푼 해신제(海神祭)가 있다. 부산은 왜관(倭館)이 존재한 데서 알 수 있듯 조선 시대 대일(對日) 외교·무역의 창구 역할을 한 도시였다. 부산의 영가대(永嘉臺)에서 베풀어진 이 해신제는 바다를 건너는 두려움을 지닌 통신사 사행원들이 용(龍)을 해신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제사를 통해 안전한 항해를 축원하던 의미 있는 행사였다.

영가대 해신제는 삼사신(三使臣)이 중심이 되어 치르는 행사로, 제술관(製述官)이 제의의 총책임자가 되고, 일본으로 떠나기 전 5일에 제사 날짜가 정해지면 역할 분담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약 3일 동안 재계(齋戒)를 하였다. 재계는 음악을 듣거나 술·고기·파·마늘 등을 먹지 않고 문상(問喪)이나 문병(問病)을 엄격히 금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제사는 대체로 자시(子時) 초에 준비하여 축시(丑時)에 시작하였는데 그 순서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제해독의(祭海瀆儀)」에 따라 ① 강신(降神)과 참신(參神), ② 전폐례(奠幣禮), ③ 초헌례(初獻禮)·아헌례(亞獻禮)·종헌례(終獻禮), ④ 음복례(飮福禮) ⑤ 망예위(望瘞位) 등으로 행해졌다. 이와 같은 부산의 영가대 해신제는 1624년부터 19세기 말 신사 유람단(紳士遊覽團)에까지 지속되어 도해(渡海)를 앞둔 사행원들의 심리적 안정에 크게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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