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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의 제사 의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050
한자 統一新羅時代-祭祀儀禮
영어의미역 Ancestral Rites of the Unified Silla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이근우

[정의]

부산에서 확인된 통일 신라 시대의 각종 제사 의례.

[장례 의례]

통일 신라 시대에는 불교를 중심으로 한 장례 의례와 국가 의례의 일부로서 산천 등 자연에 대한 제사 의례가 부산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통일 신라 시대에 들어서 불교의 영향으로 승려를 비롯하여 귀족과 일반인들도 화장을 하는 사례가 증가하였다. 화장한 후에는 골호(骨壺)에 넣어 매장하는 장골(藏骨), 강이나 산에 뼈를 뿌리는 산골(散骨) 등의 화장(火葬) 의식이 행해졌다. 장골을 한 흔적으로는 연산동 고분군에서 나온 골호를 들 수 있다. 그리고 부산광역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233호로 지정된 전 산청 석남암사지 납석사리호[영태2년명 납석제호(永泰二年銘蠟石製壺)]와 같이 골호는 일상적인 토기보다 더 정성을 들인 녹유 도기(綠釉陶器)인 경우가 많다.

[바다와 강에 대한 제사 의례]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사해(四海)에 대한 중사(中祀)로 동쪽의 아등변(阿等邊), 남쪽의 형변(兄邊), 서쪽의 미릉변(未陵邊), 북쪽의 비례산(非禮山)에 제사지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중 형변은 거칠산군(居柒山郡)에 있다고 하여 곧 부산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동래현의 고적 중 하나인 “형변부곡(兄邊部曲)이 동래현의 남쪽 해안에 있다.”라고 하였고, “모등변 신사동평현 남쪽 1리에 있었다.”라고 하였다. 동평현은 현재 당감동 일대로 추정되지만 그 위치가 해변에서 약 4㎞ 정도 안으로 들어와 있고, 동래현의 남쪽이 아니므로 모등변 신사와 형변은 다른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형변은 수영강 부근의 한 지역이었을 것이다.

또한 하천에 대한 제사로서 사독(四瀆)[나라의 운명과 관련이 깊다고 여기던 네 강]에 제사를 지냈다. 사독은 동쪽의 토지하(吐只河), 남쪽의 황산하(黃山河), 서쪽의 웅천하(熊川河), 북쪽의 한산하(漢山河)를 들고 있는데, 황산하가 바로 낙동강이다. 이처럼 통일 신라 시대에 들어 부산은 신라의 남쪽 변경으로 인식되어 그 바다와 강에 대한 제사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강과 바다에 대한 제사는 홍수나 가뭄의 방지, 원거리 항해의 안전 등을 수신(水神)과 해신(海神)에게 기원하는 의례로서 이전부터 지속되었다. 독로국의 중심 지역에 위치한 수영만은 지금보다는 훨씬 넓어 온천천 일대까지 포함되었는데, 이곳은 해신에게 제사를 지낸 곳이자 대외 교류를 위한 항해에 앞서 제사를 지냈던 중요한 곳이었다. 신라가 부산 지역을 병합한 이후 수영만에 두었던 형변은 삼국 통일 시기에 전국의 제사들을 체계화하면서 사독(四瀆)의 하나로 더욱 정비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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