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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060
한자 三國時代-城郭-關防
영어의미역 Castles and Border Defense in Three Kingdoms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나동욱

[정의]

삼국 시대 부산 지역에 있었던 방어 시설과 방어 체계.

[개설]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에 의하면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때[57~79년]에 거도(居道)가 우시산국(于尸山國)[울산]과 거칠산국(居柒山國)[동래]을 쳐서 빼앗았다는 기록이 보이며, 동래군은 본래 거칠산군(居柒山郡)으로 장산국(萇山國) 또는 내산국(萊山國)이었는데, 신라가 이를 취하여 거칠산군을 두었다고 한다. 기록상으로 볼 때 1세기 후반에 이미 울산과 동래 지역이 신라에 점령당한 것으로 나타나 있으나, 고고학적으로 볼 때 5세기 후반에 가서야 토기뿐만 아니라 무덤의 형태까지 가야 문화가 신라 문화로 바뀌게 된다. 더욱이 6세기에는 신라의 행정 구역으로 편입되어 양주(良洲)[양산] 소속의 거칠산군으로 그 밑에 대증현(大甑縣)[동평현]과 갑화량곡현(甲火良谷縣)[기장현]을 관할하고 있었다.

삼국 시대에는 정복 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특히 가야와 신라 간의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산성이 축조되었으며 치소(治所)[군사·행정의 중심지]도 평지보다 방어에 유리한 산성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부산 지역의 성곽]

부산 지역에는 이 시기까지 소급될 수 있는 성곽 유적으로 황령산의 북쪽 배산 정상에 있는 배산성과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 산상의 기장산성이 있다. 배산성의 경우 석축 산성으로 함안 봉산성, 고령 주산성, 운라산성 등 가야의 고지(故地)에서 보이는 내성과 외성의 이중 성곽 구조를 하고 있어 주목되며, 북쪽 사면 골짜기에 있는 우물지에서 확인된 5~6세기 대의 토기편은 인근 연산동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토기들과 시기가 비슷하여 그 상한 연대가 가야 시대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특히 성터의 서북쪽으로 뻗어 내린 배산의 지맥에는 연산동 고분군이 위치하고 있으며, 성터의 정상에서는 수영만, 반송, 동래, 초읍, 서면 일대와 멀리 구포 지역까지 관망할 수 있어, 5~6세기 삼국 시대 부산 지역의 중심 성곽으로 거칠산군의 치소일 가능성도 있다.

한편 기장산성 은 골짜기를 포함하는 포곡식(包谷式)의 석축 산성으로 산 정상부 집수지(集水址) 주변에서 7세기 초반대의 토기편이 다수 확인되어 기장 지역 성곽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유적으로 추정된다. 성터에서는 기장 읍내는 물론 멀리 울산 방향과 기장에서 반송 또는 철마, 송정을 거쳐 동래에 이르는 길목과 기장 앞바다까지 조망되고 있어 기장 주변의 교통로 및 왜구에 대한 해안 감시가 가능한 곳으로 삼국 시대 기장 갑화량곡현의 치소(治所)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당시 거칠산군의 서쪽에 위치한 대증현의 치소에 견줄 수 있는 성곽 유적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방어 체계]

삼국 시대 부산 지역의 성곽 유적은 타 지역 삼국 시대의 성곽 유적의 입지에서도 보듯이 주로 주요 교통로 선상에 있는 산성이나 조망이 좋은 중심 요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로써 삼국 시대는 교통 요충지의 석축 산성을 중심으로 하는 방어 체제가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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