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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의 성곽과 지방 행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236
한자 統一新羅時代-城郭-地方行政
영어의미역 Castle and the Provincial Administration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나동욱

[정의]

통일 신라 시대 부산 지역에 있었던 성곽과 지방 행정 체제.

[개설]

통일 신라는 685년(신문왕 5)에 기존의 통치 체제에서 확장된 영토와 늘어난 인구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중앙 집권적인 체제로 정비하는 주군현제(州郡縣制)를 실시하였다. 이에 수도 경주는 6부 55리 260방으로, 지방은 주·군·현으로 편제하여 전국에 9주(州) 5소경(小京) 117군(郡) 293현(縣)을 두어 중앙 관리를 파견하였다. 또한 특수한 행정 구역으로 향(鄕)·부곡(部曲)·성(城)을 두었다.

이에 따라 통일 신라 시대 부산 지역에 있었던 3군현은 경주에 가까운 양주(良州·梁州)에 편입되어 정치적·문화적 독자성을 잃어 가고, 단지 중앙 집권적 국가 조직의 일부로만 존재하게 되었다. 경덕왕(景德王)이 한화 정책(漢化政策)을 실시하여 757년(경덕왕 16)에 군현의 명칭을 한자식(漢子式) 이름으로 고치고 9주를 중심으로 관할 군현의 수를 조정함에 따라 기존의 거칠산군(居漆山郡)이 동래군(東萊郡)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그 밑에 소속된 대증현(大甑縣)동평현(東平縣)으로, 갑화량곡현(甲火良谷縣)은 기장현(機張縣)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성곽과 지방 행정]

통일 신라 시대 부산 지역에 성곽을 쌓았다는 기록은 없으나, 발굴 조사된 성곽관련 유적을 통해 통일 신라 시대의 성곽을 살펴볼 수 있다.

1. 동래 고읍성 터

동래 고읍성 터는 2002년 부산지방병무청 부지에 대해 동의대학교 박물관이 시굴 조사를 실시하였고, 2003년과 2005년에는 포스코 더 샾 아파트 건축과 관련하여 경남문화재연구원이 시굴·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동래 고읍성은 기단 석축형 판축 토성(基壇石築型版築土城)으로, 판축 토성 벽 135m가 조사되었다.

동래 고읍성에서는 통일 신라 시대의 토기를 비롯하여 건물 터 2개 동, 담장 터 1개소, 배수로 2기, 온돌 유구 2기 외에 고려 시대의 유구와 유물도 출토되었다. 통일 신라 시대와 관련된 시설들은 모두 정남향 및 정동향으로 배치하여 성 내부를 계획적으로 구축하였다. 토기 및 기와 수막새 등으로 보아 초축(初築) 시기는 통일 신라 시대 후기 전반[8~9세기]까지 올려볼 수 있다. 1021년(현종 12)에 동래군성(東萊郡城)을 수축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동래 고읍성은 통일 신라 때부터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2. 동평현성 터

동평현성 터는 1992년 부산직할시립박물관이 긴급 수습 조사를 실시하여 세 차례에 걸쳐 축조한 남쪽 성벽과 남문지, 배수구 등을 확인하였다. 또한 1995년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서문지와 서북쪽 성벽을 확인하였다. 대부분 고려 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나, 성터 일대에는 1982년에 조사된 당감동 고분군이 있으며, 5세기 후반으로 편년되는 유물이 출토되어 동래군성에 관한 기록을 참조할 때 신라 시대까지 소급될 가능성이 크다.

3. 기장 산성

기장 산성은 골짜기를 포함하고 있는 포곡식 산성(包谷式山城)으로, 신라의 고분군인 청강리 고분군 서쪽 350m 고지에 축조된 석축성이다. 성의 규모는 둘레 약 775m, 성벽의 너비는 5m 내외로 상부에 증축(增築)된 것으로 보이는 2m 너비의 성벽이 축조되어 있다. 기장 지역의 성곽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이 수습된 것으로 보아, 배산성과 비슷한 시기까지 소급될 수 있어 삼국 시대 갑화량곡현의 치소(治所)일 가능성이 있다.

[특징]

통일 신라 시대 부산 지역의 성곽은 삼국 시대의 치소(治所)가 산성에 있었던 것과는 달리 어느 정도 평화가 지속되면서 평지 가까운 곳에 치소를 두게 되는 변화가 보인다. 현재 확인된 성곽 유적은 동래군의 경우 배산 아래에 있는 동래 고읍성 터, 동평현의 경우는 부산진구에 있는 당감동 성터, 기장현의 경우는 교리에 있는 기장 산성 등 고려 및 조선 시대의 기록에서 보이는 고읍성(古邑城) 등이 있다. 이를 통해 통일 신라 시대에 지방 행정과 왜의 침입에 대비한 군사적 성격을 겸한 읍성(邑城) 축조가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일 신라 시대의 성곽은 1군현에 1성곽을 가지는데, 이 시기 부산 지역의 경우도 같은 특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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