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0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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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堂甘洞古墳群 |
영어의미역 | Ancient Tombs of Danggam-d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 산40-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가야,조선/조선 |
집필자 | 이상율 |
[정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에 있는 삼국 시대의 가야 고분군 및 조선 시대의 민묘.
[개설]
당감동 고분군은 부산의 서부 지역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삼국 시대의 고분군이다. 출토된 토기는 모두 신라계 토기에 속하는 것으로서, 토기 문화로 볼 때 당감동 고분군은 이 지역이 신라의 영향권에 편입된 이후에 조영된 유적이라 할 수 있으며, 출토 유물로 미루어 고분군의 중심 연대는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위치]
당감동 고분군은 해발 462m인 백양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의 말단부에 자리 잡은 독립된 작은 야산의 경사면에 위치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81년 당평초등학교 부지 조성 공사를 하다가 발견되어 부산대학교 박물관이 학교 부지 내에 포함된 고분만을 대상으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는 당감동 고분군의 분포 면적 중 동쪽 일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발굴 당시 중앙부가 이미 잘려 나갔으므로 자연히 발굴 지역이 두 곳으로 나뉘었지만, 먼저 소멸된 중앙부를 포함하여 두 곳의 고분은 모두 서로 연결되는 같은 유적이다. 발굴된 유구는 삼국 시대의 구덩식 돌덧널무덤 33기, 조선 시대의 민묘 4기, 연대 불명의 돌덧널무덤 1기 등 모두 38기이다. 이처럼 시대가 다른 유구가 복합되어 있지만, 삼국 시대의 구덩식 돌덧널무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명료하게 밝혀졌으므로 삼국 시대의 군집묘 유적으로 파악해도 좋을 것이다.
[형태]
구덩식 돌덧널무덤은 두 가지 유형으로 확인되었다. 하나는 독립된 부곽을 가진 형식으로 주곽과 부곽이 일직선상으로 배치되는 특징이 있는데, 이 유형에 해당하는 것은 7호분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독립된 부곽이 없거나, 혹은 부곽이 주곽 내로 흡수되어 외형상 단일 석곽의 형식을 띤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단독의 구덩식 돌덧널무덤은 이후 부곽이 주곽 내부로 통합되거나 혹은 사라진 것들인데, 부곽이 통합된 경우 전체적으로 꽤 세장한 석곽 형태를 띠고 있다.
부곽을 지닌 것은 앞 시기의 덧널무덤 단계에서 그 시원을 찾을 수 있는데, 매장 주체부가 목곽에서 석곽으로 대체된 것이다. 이러한 형식을 가진 최고(最古)의 사례는 5세기 중엽으로 비정되는 부산 복천동 고분군 중 21호분과 22호분으로서 주곽이 목곽 대신 석곽 또는 석실로 바뀐 것이며, 당감동 7호분도 이 계보를 이어 주곽은 물론 부곽까지 석곽으로 바뀐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낙동강 하류 지역에서 주곽과 부곽 양쪽 모두가 석곽 형식인 것은 부산 오륜대 고분 중 9호분과 10호분이 있는데, 이 유구는 매장 주체부의 깊이나 출토 유물로 미루어 5세기 중엽으로 비정되는 부산 복천동 고분군 10호분과 11호분에 바로 후속하는 것임은 잘 알려져 있다. 당감동 7호분은 부산 오륜대 고분 9호분과 10호분의 매장 주체부와 특징을 같이하는 점에서 두 고분은 연대적으로 같은 시기라 할 수 있다.
[출토 유물]
심하게 도굴되었거나 파괴되어 다량의 유구가 조사되었음에 비해 유물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토기류는 고배(高杯)[굽다리 접시], 통형 기대(筒形器臺), 고배형 기대(高杯形器臺), 완(碗), 단경호(短頸壺)[짧은 목 항아리], 장경호(長頸壺)[긴 목 항아리], 대호(大壺)[큰항아리], 연질 옹(軟質甕) 등이 출토되었으며, 철기류는 대도(大刀), 쇠낫[철겸(鐵劍)], 쇠화살촉, 철부(鐵斧)[철제 도구이자 무기], 철도자, 덩이쇠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토기류는 모두 신라 양식에 속하는 것들로서 이 지역의 토착 토기를 제압하고 완전히 신라에 편입된 이후에 축조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현황]
당감동 고분군이 위치한 야산은 발굴 당시 아파트 단지와 주택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나, 점차 개발로 인해 야산까지 거의 사라져 버려 이제는 고분군의 존재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당감동 고분군은 낙동강 하류 지역에서 가야의 토착 문화가 5세기 후반에 이르러 신라의 영향을 받아 완전히 신라 양식으로 전환하였음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당감동은 삼국 시대 이래 오늘날의 부산 중심부를 다스렸던 대증현(大甑縣)과 동평현(東平縣)의 치소가 있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 동평현성(東平縣城)으로 전해지는 성터도 당감동 고분군과 인접한 동평동의 야산 일대에서 확인되었다. 당감동 고분군의 파괴가 심해 자체적으로 성격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이 지역의 역사적 내력과 결부시켜 생각해 볼 여지는 충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