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부산일본인상업회의소 연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971
한자 釜山日本人商業會議所年報
영어의미역 Yearbook for Japanese Chamber of Commerce in Busan
이칭/별칭 『부산상업회의소 연보』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차철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도서
관련인물 대지충조(大池忠助)|박간방태랑(迫間房太郞)|향추원태랑(香椎源太郞)
발행인 구납중길(久納重吉)[1905년판]
판형 국판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8년연표보기 - 『부산일본인상업회의소 연보』『부산상업회의소 연보』로 제호 변경
소장처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월드컵대로 42지도보기
소장처 히토츠바시 대학(一橋大學) 경제연구소 - 일본 도쿄도(日本 東京都 國立市 中2-1)
제작|간행처 부산일본인상업회의소 -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1가[부산부 서정 1정목 5, 6]

[정의]

개항기 때 부산일본인상업회의소가 발행한 정기 간행물.

[창간 경위]

『부산일본인상업회의소 연보(釜山日本人商業會議所年報)』는 부산일본인상업회의소가 회원들에게 부산의 무역과 금융 등 경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발간된 것이다.

[형태]

연 1회씩 발간하는 연보이며, 창간과 종간 연도는 확인할 수는 없다. 1905년 판의 발행인은 구납중길(久納重吉)이며, 판형은 국판이다.

[구성/내용]

『부산일본인상업회의소 연보』는 부산일본인상업회의소의 각종 회의 결정 사항 및 임원진의 활동, 한국의 무역 상황, 부산의 무역 상황, 부산항의 교통 운수·상공업·금융, 부산항의 기상, 부산거류민단(釜山居留民團)의 소식, 각종 통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기사들은 당시의 시대상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즉 한국과 일본의 경제 시스템을 통합시키려는 노력이 기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당시 한국 화폐인 엽전의 처리 문제와 도량형의 통일이 주요 소재였다.

『부산일본인상업회의소 연보』가 간행되던 시기는 조선이 아직 식민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일본인들과 조선인들이 갈등하고 있는 모습도 자주 포착된다. 예를 들어 1907년 조선인 인부들의 동맹 휴업, 국채 보상 운동 등 조선의 반일적인 사회 분위기에 대응하는 일본인상업회의소 측의 반응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 1906년판 부록으로 『일한 상품 박람회 보고 개요(日韓商品博覽會報告槪要)』가 첨부되어 있어, 당시 부산일본인상업회의소가 주최한 행사의 전모에 대해 상세히 알 수 있다. 또 1907년판에는 한국의 순종(純宗) 황제가 부산을 방문해, 상품 진열관을 둘러보고 하사금을 내린 사실도 크게 다루고 있다.

[변천과 현황]

부산일본인상업회의소는 부산상업회의소의 전신으로, 1897년 부산상법회의소에서 기원하였다. 이후 1893년 부산항일본인상업회의소, 1908년 부산상업회의소, 1916년 조선인 측의 유사 단체와 통합하여 부산상업회의소라고 칭하는 등 여러 차례 명칭이 바뀌었다. 이에 따라 기관지의 명칭도 1908년 이전에는 『부산일본인상업회의소 연보』였으나, 이후에는 『부산상업회의소 연보(釜山商業會議所年報)』로 변경되었다. 일본 히토츠바시 대학[一橋大學] 경제연구소가 1904년~1908년 판을 소장하고 있으며,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이 1907년 판과 1909년 판을 소장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이 식민지로 접어들기 전 부산항의 경제 상황과 조선인과 일본인 간의 관계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