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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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在俊 |
영어음역 | Gim Jaejun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로13번길 31[초량동 32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차철욱 |
[정의]
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출신의 경제인이자 교육자.
[가계]
김재준(金在俊)은 1898년 5월 26일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났다. 같은 나이인 공무성(孔武成)과 결혼하여 김규현, 김석현, 김정현 세 아들을 두었다.
[활동 사항]
김재준은 일본 명치대학을 졸업한 뒤, 1924년부터 해산물 객주 회사 마루카네상점을 경영하며 북해도, 상해, 청도, 대만과 조선 각지로 판로를 확장하였다. 또한 부산의 대표적인 조선인 해산물 보관 창고였던 남선창고주식회사의 주주로 참여하였다. 남선창고주식회사 주식은 1927년부터 1935년까지는 모든 주주가 균등하게 20주씩 보유하였으나 1936년부터 불균등하게 보유했는데, 김재준은 1938년 92주를 보유하였다가 1939년부터 2주로 줄였다. 그는 이 창고에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초까지 주로 미역 등의 해산물을 기탁하였으며, 감사[1926~1928년]와 이사[1932~1935년]를 맡는 등 경영에도 깊이 참여하였다.
김재준은 사회 운동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1924년 5월 17일 부산 청년 회관에서는 일본으로 도항하기 위하여 부산에 모여든 수천 명의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산 시민대회가 열렸는데, 여기에서 안희제(安熙濟), 윤상은(尹相殷) 등과 함께 시민대회 집행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당시 부산수상경찰서는 노동공제회와 상애회를 경유하지 않으면 도항을 불허했고, 노동자들이 여행권을 발급받으려면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였다. 시민대회는 위와 같은 불합리한 여행권 발급 절차를 없애고, 일주일 이내에 4,000여 노동자를 도항케 하라고 요구하였다.
또한 부산의 교육계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여 1924년경 사립초량학원의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1935년 부산부의 6개 공립 보통학교 학부형회가 부산제2상업학교의 학급 증설을 위해 경상남도 도청으로 대표자를 파견할 때 동참하기도 하였다. 1938년에는 부산초량흥학회 활동을 통해 상공인 양성 교육기관 증설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 모임의 간사장이었던 김재준은 초량사립보통학교 내 부산사설상업실습강습회를 사립부산상업실수학교로 정식 인가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해방 후 1949년에는 부산해사국장으로 근무하면서 대한조선공사와 대한해운공사의 설립 위원으로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