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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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建鎬 |
영어음역 | Min Geonho |
이칭/별칭 | 해은(海隱),성로(聖老)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580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동철 |
[정의]
개항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관료.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로(聖老), 호는 해은(海隱). 충정공 둔암(遯庵) 민신(閔伸)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민백빈(閔百彬)이고, 할아버지는 민경혁(閔敬爀)이며, 아버지는 민치호(閔致琥)이다. 어머니는 최원택의 딸로 삭령 최씨(朔寧崔氏)이다. 2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은 민장호이다. 부인은 이병규의 딸로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며, 3남 3녀를 두었다. 아들은 민영진[초명 민영국]·민영희·민영훈이고, 사위는 윤주원·고재설·이항림이다.
[활동 사항]
민건호(閔建鎬)는 1843년(헌종 9) 8월 27일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1881년(고종 18) 박정양(朴定陽)과 이헌영(李(金+憲)永) 등 12명의 관료가 중심이 된 조사 시찰단(朝士視察團)의 일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12명에게는 내무성과 세관 등 관청과 육군이나 기선(汽船) 등을 파악하여 보고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민건호는 이헌영의 수행원으로 세관을 담당하였다. 이때 세관, 학교, 병원, 기차 등 새로운 문명을 접한 경험은 개항장 부산에서 관료 생활을 할 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883년(고종 20) 8월 초대 부산감리서 감리로 이헌영이 임명되었다. 감리를 보좌하는 장부(帳簿)·서기 등 직원은 감리가 선발하였는데, 이때 부산감리서 첫 장부로 한백영, 서기로 민건호·서상원·권재형이 임명되었다. 1881년 조사 시찰단의 이헌영과 민건호의 관계가 부산감리서에서는 감리와 서기의 관계로 바뀌었다. 개항장의 감리서는 개항장 외국인의 상업 및 기타 활동을 관리하고 개항장의 해관[세관]을 관리 감독하기 위해 설립된 지방 관청이다.
민건호는 1883년 12월 11일 부산감리서에 도착하여 12일부터 근무하였다. 이헌영과 민건호 등은 1884년 1월 2일 감리통상사무공서(監理通商事務公署)라는 현판을 달고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였다. 민건호는 감리를 보좌하면서 부산항 해관이나 일본 영사관, 중국 영사관, 동래 부사, 부산항 경찰관 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는 거의 매일 부산감리서와 해관에 출근하였다.
정기적으로 세무 장부 문서를 교정하고 정서하였으며, 일본 전신분국에 가서 업무를 전신으로 보고하는 일도 하였다. 청국 조계지 선정 문제, 영국과 독일 영사관 구역과 건물 터 점검 및 건물 짓는 일, 일본인 회사 관련 업무, 개항장을 출입하는 선박의 물품 점검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였다.
일본인의 통행 범위 규정 마련, 전염병 예방, 은행에 가서 월급을 찾아오는 업무, 채무 업무 타협, 전선 설치, 개항장의 회사 설립, 만인계(萬人契) 설치, 포경(捕鯨) 회사, 청국인 거류지 경계 문제 등 개항장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외국인, 내국인과 관련된 실무를 담당하였다. 1885년(고종 22)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현 외교부]의 주사가 되었다.
특히 1889년(고종 26) 4월에는 정현철, 박기종, 일본인 마쓰오 도모노스케[松尾元之助] 등과 함께 부산항 부근의 포구를 왕래하면서 물품을 운송하는 기선 회사를 설립하였다. 1890년(고종 27) 부산감리서 방판(幫判)이 되었고, 1891년 다대진 첨사가 되었다. 1891년 2월에는 부산감리서 방판겸 포경위임(捕鯨委任)으로 경찰관 박기종과 함께 일본인 부상해산회사(扶桑海産會社)에 경상도에서의 포경 활동을 인정하는 부산항 포경 약장(捕鯨約章) 작성을 주도하였다. 민건호는 중간에 잠시 그만둔 적도 있지만, 1894년(고종 31) 가을까지 부산에서 관료 생활을 하였다. 1920년 1월 19일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술로는 『동행 일록(東行日綠)』과 『해은 일록(海隱日綠)』이 있다. 『동행 일록』은 1881년 조사 시찰단 일원으로 참가한 일본에서의 경험담으로, 1881년 2월부터 8월까지 쓴 일기이다. 일본의 나가사키[長崎], 오사카[大阪], 교토[京都], 고베[神戶], 도쿄[東京] 등 주요 도시에서 새롭게 경험한 근대 문물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해은 일록』은 1883년 9월부터 1914년 12월까지 쓴 일기이다. 민건호가 부산에서 활동하던 당시 관료로서의 활동과 개인의 일상생활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개항기 개항장인 부산항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일급 자료이다. 『동행 일록』과 『해은 일록』은 현재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들은 2006년 부산 근대 역사관 사료 총서로 영인되었으며, 2008~2013년 부산 근대 역사관 사료 총서로 번역되었다.
[묘소]
묘소는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구시리 산36-1번지에 있다. 묘비명은 가선대부 행중화 도호부사 여흥 민공 휘건호 지묘(嘉善大夫行中和都護府使/驪興閔公諱建鎬之墓)이다. 족보에는 해남군 현산면 구시리 선영 아래 부인과 합장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