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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거류지설정위원회 견필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460
한자 淸國居留地設定委員會見筆記
영어의미역 Council for Deciding the Settlements in the Qing Dynasty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연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도서|회의 속기록
간행자 통감부
표제 淸國居留地設定委員會見筆記
저술 시기/일시 1909년연표보기 - 저술
소장처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월드컵대로 462[초읍동 산 51-1]지도보기
간행처 통감부 -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2-1

[정의]

1909년 통감부에서 간행한 청국거류지설정위원회 속기록의 일본 측 원본.

[편찬/간행 경위]

1906년 10월 1일 일본감리서가 폐지되고 이사청이 설치되면서 개항장에서 일본의 권한이 강화되었다. 반면, 청일 전쟁 패배 이후 청국의 기세는 점차 꺾이고 있었다. 당시 개항장에서 일본인 다음으로 많은 외국인은 청국인이었기 때문에, 조선 피탈을 앞두고 외국과의 마찰을 피하고자 한 통감부는 청국인을 원활하게 관리하기 위해 부산, 인천, 원산에 청국 거류지를 재설정할 필요를 느꼈다. 따라서 1909년 3월~4월 주한 청국 총영사를 불러 청국거류지설정위원회를 개최하고 양국에서는 이 회담의 속기록을 작성하였는데, 『청국거류지설정위원회 견필기(淸國居留地設定委員會見筆記)』는 일본 측의 속기록 원본이다.

당시 인천, 부산, 원산의 청국 거류지 문제 중 가장 복잡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은 부산 청국 거류지 문제였다. 따라서 『청국거류지설정위원회 견필기』부산이사청에서 회담 후 부산 청국 거류지 문제에 참고 자료로 삼기 위해 통감부의 보관본을 가져다 참고해 온 것으로 생각된다.

[서지적 상황]

속기록 원본은 2부를 작성하여 1부는 일본 외무성에 보고하고 1부는 통감부에 보관하였는데, 지금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은 통감부에 보관되어 온 원본이다. 내면 표지에 당시의 필기자인 편산항부(片山恒夫)의 도장이 찍혀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1935년 12월 21일 부산부에서 부산부립도서관으로 이관되어 정식 대장에 등록된 것은 1937년 4월 1일이었다.

[형태]

미농지[기름종이] 76매의 분량으로, 크기는 가로 20㎝, 세로 28.5㎝이다.

[구성/내용]

회담은 총 5회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3회 회담인 3월 31일에 양측 대표가 조계 장정에 조인하고, 제4회·제5회 회담에서는 조인된 조계 장정의 사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였다. 『청국거류지설정위원회 견필기』에는 제1회분은 누락되었고, 제2회분부터 제5회분까지만 게재되어 있다. 1회 회담은 양측 대표의 인사 정도에 그쳤기에 굳이 속기록으로 회담 내용을 남길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생략된 것으로 추측된다. 회견 일시, 회견 장소, 참석자 등 내용이 매우 상세하다.

[의의와 평가]

일제가 조선을 피탈할 당시 조선을 둘러싼 청·일 관계를 살펴보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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