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2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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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琫起 |
영어음역 | Jang Bongg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선화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장봉기(張琫起)[1902~?]는 1902년 9월 5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기장면 3·1 운동 때 최연소자[18세]로 활약하였다. 전국으로 확산되는 3·1 운동의 소식과 동래 장터의 3·1 운동 소식이 기장에 전해지면서 김수룡(金壽龍)·김도엽(金度燁)·권철암(權鐵巖)·구수암(具壽巖)·최기복(催基福)·이택규(李澤奎)·박공표(朴孔杓)·오기원(吳基元) 등 기장 지역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시위를 계획하였으며 장봉기는 주민 동원 역할을 맡았다.
4월 5일 시위 주도자들은 ‘양심발원(良心發源) 인도적 자유 민족’과 ‘조선 독립 만세, 조선독립단’이라고 대서특필한 큰 깃발을 들고 기장 장터에 도착해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며 기장면 3·1 운동을 주도하였다. 장봉기는 대변리를 비롯하여 무양·신암·공수·동암 등 6개 마을 주민 수백 명을 시위 장소인 기장 장터로 집결시키고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된 장봉기는 1919년 5월 1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 받았다. 대구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6월 11일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민선 기장면장으로 당선되어 활동하였다. 1997년 3월 10일 사망하였으며 장례는 3월 12일 군민장으로 진행되었다.
[묘소]
묘지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 실로암 공원묘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2년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