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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204
한자 長安堤碑
영어의미역 Monument for Janganj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 산95-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정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비|기념비
관련인물 이인복(李寅馥)|김류(金流)|김정창(金晶滄)|김응현(金應鉉)|김우정(金禹鼎)|이기윤(李氣潤)|김정한(金鼎漢)|이덕윤(李德潤)|이석윤(李碩潤)|이정윤(李晶潤)|김로필(金魯弼)|이경윤(李敬潤)|강두하(姜斗河)
재질 화강암
크기 105.8㎝[높이]|68.2㎝[너비]
소유자 기룡 마을
관리자 부산광역시 기장군청
건립 시기/일시 1823년 6월연표보기 - 건립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9년연표보기 - 한국도로공사·창원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00년 - 장안제 수축
현 소재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 산95-1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장안제를 쌓은 기념으로 세운 비.

[건립 경위]

장안리 일대에 형성된 대평(大坪)들은 수리 안전답이 아닌 탓에 작은 가뭄에도 피해를 입었다. 장안제 비(長安堤碑)는 1800년 장안제를 축조한 후 농사에 많은 도움이 되자, 23년 뒤인 1823년(순조 23) 6월 업적을 기려 세웠다.

[위치]

기룡리 마을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기룡 마을 어귀 동쪽에 농산물 판매장이 있다. 여기서 기룡천을 건너 구릉지로 난 길을 따라가면 구릉 끝자락에 해당하는 도로변에 세워져 있다. 소재지 주소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 산95-1번지이다.

[형태]

장안제 비는 오른쪽 위 모서리가 약간 깨져 있고, 전체적인 상태는 양호하나 부분적으로 탈락된 곳이 있다. 비석은 비두, 비좌는 결실되었고 비신(碑身)만 남아 있다. 비문의 제목은 전서체(篆書體), 본문은 해서체(楷書體)로 새겨져 있다. 비신의 크기는 높이 105.8㎝, 너비 68.2㎝이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는 ‘장안제비(長安堤碑)’라는 비제(碑題)와 함께 “이 건천(乾川)[현 장안천]의 대평들은 작은 가뭄에도 내가 마름으로 항상 농사에 어려움이 있었다. 경신년[1800] 봄에 상하의 농민을 권유하여 제방을 수축할 때 기룡 마을의 8명이 생각을 분발하여 건천의 북쪽 산 밑에 제언을 수축해 모든 물을 이리로 흐르게 하니, 대평들 농민들이 가뭄에 근심이 없어 마을 사람들이 모두 편하게 농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업은 가히 먼 장래를 바라본 감독 8명의 덕분이다. 둑을 완성한 날 비문을 써 놓고, 그 후 계미년 봄에 그 업적을 빠뜨리지 않기 위해 다시 돌을 다듬어 비를 세운다. 계미년[1823] 6월 상순[長安堤碑 乾川機之大坪 小旱則川乾 故坪農常艱難 庚申春 上下敎勸民 修堤堰是時 騎龍村八人 感激奮發 乾川北山下築堤 諸水自此 坪農不優旱 村民皆安 其業可見聖化遠覽 監八人賢與也 堤成日立石誌之 後癸未春 石OO泉 恐其蹟之泯也 復治石立 昭陽協洽 六月上澣]”이라고 적혀 있다.

뒷면에는 “제방 축조의 도감은 이인복, 별임은 김류이었다. 새로 창건한 8명은 중건 도감 김정창, 유사 김응현, 감역 김우정·이기윤·김정한, 유사 이덕윤·이석윤·이정윤이었다. 창명객 김로필이 구술하고 간곡사인 이경윤이 글을 새겨서, 계미년 6월 하순 강두하가 비를 세웠다. 동서 길이는 250척[약 75.75m], 남북 넓이는 349척[약 105.75m], 몽리 답은 31석 8두지이다[都監 李寅馥 別任 金流 新創八人 重建都監 金晶滄 有司 金應鉉 監役 金禹鼎 李氣潤 金鼎漢 有司 李德潤 李碩潤 李晶潤 滄溟客 金魯弼述 艱谷士人 李敬潤 寫 崇禎紀元後四癸未(1823)六月下澣 立碣 姜斗河 東西長 二百二十五尺 南北廣 三百四十九尺 蒙利沓三十一石八斗地]”라고 되어 있다.

[현황]

1999년에 한국도로공사와 창원대학교 박물관이 비를 발굴하였다. 주변이 동해 고속 국도 부산~울산 간 공사 구간에 포함되나, 비가 위치한 곳은 지형 변화가 없어 원 소재지에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기룡 마을이 소유하고, 부산광역시 기장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장안제 비는 비석의 건립 경위를 통해 기장 지역의 농사짓는 자연 환경과 제언 쌓는 과정을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지역에서 활동한 인사들 및 장안제 수축과 비문 건립의 분업 과정을 보여 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은 자료이므로 보존에 힘써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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