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0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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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文道墓碑 |
영어의미역 | Tombstone of Jeong Mundo |
이칭/별칭 | 동래 정씨 시조 호장 정문도 묘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 산73-2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기웅 |
[정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문도(鄭文道)의 묘비.
[건립 경위]
정문도 묘비(鄭文道墓碑)는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 화지산의 화지 공원 내에 위치한 동래 정씨 2대인 정문도의 묘소 남동쪽에 위치한 두 개의 묘비 가운데 하나이다. 1701년(숙종 27) 21세손인 밀양 부사 정시선이 마모된 비문을 새로 고쳐 세운 것이다.
[위치]
정문도 묘비는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 산73-28번지 화지 공원 내 정문도 무덤 앞 동남쪽에 있다.
[형태]
비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이수(螭首)는 타원형으로 양옆에 파도 무늬, 앞면에 연꽃무늬를 새기고 꼭지에는 달걀 모양의 돌을 얹었다. 비의 크기는 높이 146㎝, 너비50㎝, 두께 25㎝이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는 ‘동래 정씨 시조 호장 정문도지묘(東萊鄭氏始祖戶長鄭文道之墓)’라는 비제(碑題)가 적혀 있고,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공의 휘는 문도로 정씨의 시조이다. 묘소가 동래 화지산 왼쪽의 언덕에 있는데, 그 위에 여태 글 하나 남아 있지 않아 세계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조정의 효종 대왕 시대에 장단면 송림산 아래에서 오래된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다 허물어진데다 으슥하였다. 거기에서 묘지문이 나왔는데, 곧 예부 상서 문안공 정항의 묘소이었다.
기록하기를 ‘그의 선조는 동래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정목은 태부경에 올랐었고 할아버지 정문도와 증조할아버지 정지원은 본 동래군의 호장을 지냈다. 정항은 나이 23세에 고려 숙종 임오년[1102] 과거에 급제하였고, 인종 병진년[1136]에 죽었으니, 곧 송나라 소흥 6년이다. 정항에게 형이 셋이 있었는데, 정제는 일찍 죽었고, 정점과 정택은 문장의 재능으로 조정에 이름이 알려졌다’라고 한다. 공에 대한 연대기를 이 글에서 대략 볼 수 있으니, 후에 사라질 것을 대비하여 삼가 묘표의 비음에 추기해 둔다. 명 숭정 갑신년 58년 뒤 신사년[1701] 겨울 동짓날, 밀양 부사 정시선 개수[公諱文道 爲鄭氏始祖 葬在東萊華池山子坐原 而其上 世無文可徵 至我孝宗大王時 長端松林山下 有古墓 毁而幽 誌出 乃禮部尙書文安公鄭沆墓也 有曰其先 東萊人 考諱穆 攝太府卿 祖諱文道 曾祖諱之遠 皆爲本郡戶長 沆年卄三 以高麗肅宗壬午登科 卒于仁宗丙辰 卽宋之紹興六年 沆三兄 濟早卒 漸·澤 皆以文章材幹 有名于朝云 公之年代 此可槩見 謹追記於表陰 俾後有歿 皇明崇禎甲申後五十八年辛巳 冬至日 密陽府使鄭是先改竪].”
[현황]
화지 공원 내 정문도 묘 옆에 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부산 양정동 배롱나무와 함께 잘 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