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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002
한자 嚴信永遺愛不忘碑
영어의미역 Stone Monument for the Eternal Remembrance of Eom Sinyeong
이칭/별칭 군수 엄신영 유애불망비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차성로417번길 35[교리 62]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강대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비|불망비
관련인물 엄신영(嚴信永)
재질 화강암
크기 83㎝[높이]|33㎝[너비]|9㎝[두께]
소유자 부산광역시 기장군청
관리자 기장 향교
건립 시기/일시 1904년 12월연표보기 - 건립
현 소재지 기장 향교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교리 62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교리에 있는 개항기 기장 군수 엄신영(嚴信永)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엄신영이 기장 군수 재임 시절 기장 향교에 베푼 은덕을 잊지 않기 위하여, 1904년 정기대 외 두 명이 세웠다. 엄신영은 가감역(假監役) 겸 기장 군수, 중추원 의관을 역임한 후 낙향하여 양산 지역에서 양성학교의 설립에 참여하였다.

[위치]

엄신영 유애불망비(嚴信永遺愛不忘碑)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교리에 있는 기장 향교 어귀 왼쪽에 세 개의 비와 함께 있다. 소재지 주소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교리 62번지이다.

[형태]

기단과 가첨석은 없으며, 일반적인 비석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비의 크기는 높이 83㎝, 너비 33㎝, 두께 9㎝이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는 ‘군수 엄신영 유애불망비(郡守嚴信永遺愛不忘碑)’라는 비제(碑題)와 함께 “향사(享祀)의 제수 마련 넉넉히 도우시니/ 복유(復乳)처럼 그 은덕 두터웠다네. 선비들의 기강을 장려하여 일으키니/ 환주(還珠)의 은혜 두루 흡족하였다네[行郡守嚴公信永遺愛不忘碑 贍助享需 德重復乳 獎興士紀 恩洽還珠]”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광무 8년[1904] 12월 일. 도훈장 정기대, 향장 신영수, 도감 김병주[光武八年十二月日 都訓長 鄭基大 鄕長 辛永壽 都監 金秉冑]”라고 하였다.

[현황]

엄신영 유애불망비는 부산광역시 기장군이 소유하여 기장 향교에서 관리하고 있다. 비석의 가운데 금이 나 있어 관리하는 데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의의와 평가]

엄신영은 기장 지역 출신으로 조정의 요직을 거치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 근대 학교를 세우고 민족 역량의 함양에 힘쓴 선각자이다. 특히 그의 딸은 양산 지역의 독립투사인 윤현진(尹顯振)과 혼인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독립 운동과 관련하여 엄신영 본인뿐만 아니라 가계와 활동에 대하여 더욱 연구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참고문헌]
  • 『부산 금석문』(부산광역시·경성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02)
  • 디지털양산문화대전(http://yangsan.grandculture.net)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05.07 내용 수정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899년 3월 30일 - 엄신영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947년 6월 26일 - 엄신영 사망 → 삭제 ------------------------------- [건립 경위] 엄신영[1899~1947] → 엄신영 ------------------------------- [의의와 평가] 윤현진(尹顯振)[1892~1921] → 윤현진(尹顯振)
이용자 의견
이** 엄신영[1899~1947]의딸과 윤현진(1892~1921)이 결혼하였다는 사실은 엉터리입니다.
장인과 사위의 생몰년도를 비교하면 알 수 있는데...
그의 딸은 양산 지역의 독립투사인 윤현진(尹顯振)[1892~1921]과 혼인하였다
  • 답변
  • 부산역사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내용에 대하여 수정이 되었습니다. 의견 개진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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