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부산곡물상조합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869
한자 釜山穀物商組合
영어의미역 Busan Grain Dealer Association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하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조합
설립 시기/일시 1919년 3월연표보기 - 설립
최초 설립지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있었던 곡물상 조합.

[개설]

1919년 설립된 부산곡물상조합은 부산부 대청정 1정목 35번지[현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초창기 조합장을 지낸 사람은 판전문길(坂田文吉)이었으며 부산거류민단과 부산학교조합, 부산상업회의소 의원을 역임한 부산의 중진이었다. 일찍부터 부산창고회사와 부산수산회사, 조선와사전기회사 등의 임원으로 활동하는 등 부산에서 실업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보였는데, 1906년에는 부산곡물시장 취체역, 1918년에는 부산연거래시장 조합장, 1920년에는 부산곡물신탁주식회사 전무 취체역을 역임하는 등 곡물 거래와 관련된 활동도 두드러졌다.

[설립 목적]

부산곡물상조합은 정미 시장(正米市場)[쌀을 거래하는 시장]을 경영하여 미곡 거래의 편익을 도모하는 한편 그 폐풍(弊風)을 교정하여 조합원 상호의 친목을 다지는 것을 사명으로 하였다.

[변천]

부산곡물상조합은 1919년 3월에 설립되었다. 부산곡물상조합이 경영한 부산 정미 시장은 1906년 10월 13일 부산이사청으로부터 부산 미곡 시장으로 설치 인가를 받았고, 1907년 10월 10일 부산이사청에서 시장 계속 인가를 받았으며, 1912년 10월 12일에는 경상남도 장관으로부터 시장 계속 인가를 받았다. 1917년 3월 31일 경상남도 장관 시장 존립 기간 연장 인가를 받았고, 1922년 3월 16일에는 조선총독부로부터 「신시장 규칙」에 의해 시장 설치 인가를 받았다. 1932년 2월 26일 조선총독부로부터 「정미 시장 규칙」에 의해 정미 시장 규칙이 인가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부산미곡거래소의 모태이다. 거래소 설립 후 조선에서 유일한 현물 거래 시장이었던 부산 정미 시장을 운영했는데, 1933년 당시의 매매량이 930만 304엔에 이를 정도로 융성하였다. 부산 정미 시장의 매매 물건은 쌀과 대두 및 잡곡 등이며, 매매자는 조합원에 한정되었다. 시장의 개폐 시간은 매일 오전 9시에서 정오까지였으며, 휴장일(休場日)은 연초 3일간, 연말 3일간, 일요일, 제일(祭日) 및 축일(祝日), 시정 기념일(始政記念日), 지방 제일(地方祭日) 등이었다. 1921년 부산곡물상조합의 조합원은 76명이었고, 1934년 당시의 조합원은 67명이었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부산부의 곡물상 현황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부산 지역 일본인 경제인들의 네트워크의 한 단면을 알 수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