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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827
한자 盤松三節祠
영어의미역 Bansong Samjeolsa Shrin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신반송로182번길 24[반송동 14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39년연표보기 - 반송삼절사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840년연표보기 - 사당의 강당인 세한당 증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반송삼절사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2010년연표보기 - 반송삼절사 담장 보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2011년연표보기 - 반송삼절사 이축
문화재 지정 일시 1986년 5월 29일연표보기 - 반송삼절사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반송삼절사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40년 - 양씨 일문 삼절의 합사를 윤허받음
현 소재지 반송삼절사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신반송로182번길 24[반송동 143]지도보기
성격 사당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1칸
소유자 남원양씨삼절사반송문회
관리자 남원양씨삼절사반송문회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에 있는 조선 후기 남원 양씨 순절자들의 사당.

[개설]

반송삼절사(盤松三節祠)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양지(梁誌)·양조한(梁朝漢)·양통한(梁通漢)남원 양씨 일문 세 명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 지내는 곳이다. 이들 중 양지(1553~1592) 는 경기도 파주 사람으로 적성현감을 거쳐 삭녕군수로 부임하여 임진왜란 때 성을 지키다 순절하였으며, 이조 판서에 증직되었다. 양조한(1555~1592)은 동래향교(東萊鄕校) 유생으로, 동래향교에 봉안된 성현들의 위패를 동래읍성 내의 정원루(靖遠樓)에 봉안한 후 순절하여 호조 정랑에 증직되었다. 양통한(1559~?)은 양조한의 아우로서 경주의 문천회맹(蚊川會盟), 팔공산회맹(八公山會盟)과 함께 창녕 화왕산성(昌寧火旺山城)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가 순절하였으며, 이후 호조 좌랑에 증직되었다.

임진왜란 때 순절한 이들 삼공신(三功臣)의 넋을 위로하고 그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약 300여 년간 남원 양씨 문중 및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매년 봄·가을에 향사를 모셔왔으며, 향토방위를 통한 호국정신과 당시의 사회윤리관 확립을 위한 정신사적 측면, 그리고 이를 기념하는 현장인 점을 감안하여 경역 전체를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위치]

반송삼절사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 143번지에 위치한다.

[변천]

반송삼절사는 1839년(헌종 5) 동래부사 이명적(李明迪)이 건립하였다. 동래부(東萊府) 사림의 제의로 삼절사(三節祠)라고 칭하게 되었고, 이듬해인 1840년(헌종 6)에 사림의 요청으로 경상감사가 장계를 올려 일문 삼절(一門三節)의 합사를 조정으로부터 윤허받았다. 제수 등 제반 비용은 동래부에서 제공하였고, 관리와 제향은 향내 유림이 주관하였다. 같은 해 사당의 강당인 세한당을 증축하였는데, 이때 목재 일체를 경상좌수영(慶尙左水營)의 금양 송추(禁養松楸)[산소에 심는 나무 등 채벌을 금지한 나무]를 채벌 사용하라는 절도사의 허락을 받아 완공하였다. 당시 부내(府內) 각 기관과 동내의 찬조금이 395냥 3전이었다. 이후 1989년 5월 공사에 착공하여 1990년에 중수하였다. 2010년에는 누수로 건물 담장을 보수하였고, 2011년에는 사당을 이전·복원하는 등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형태]

위패를 봉안한 사당, 제사를 지내는 재실, 관리사 등 목조 건물 3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황]

현재 반송삼절사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남원양씨삼절사반송문회이며, 1986년 5월 29일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1910년에는 국권 피탈 후 일제의 탄압이 혹심하여 반송삼절사의 삼위 위패를 사가(私家)에 봉안하고 제향도 밤중에 하게 되었다. 사우(祠宇)마저 헐어 버리려는 것을 창고라고 속여 간신히 보존하였다. 각종 현판과 기록 문서 등도 압수되고 썩어 현재는 삼절사 세한당의 현판만이 보존되어 있다. 광복 후 위패를 다시 봉안하고 춘추 제향을 지내 오고 있다.

[의의와 평가]

반송삼절사는 규모와 위세 면에서 볼 때 부산의 충렬사(忠烈祠)[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반송삼절사와 같이 관련 자료가 충실히 남아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자료의 대부분은 반송삼절사가 건립된 1839년을 전후로 20세기까지 기록하고 있어, 이 시기 부산 향반 사회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대표적인 소장 자료로는 『삼절사 지알록(三節祠祇謁錄)』, 『삼절사 청조문(三節祠請助文)』, 『상절제안』, 『선세 행적기』, 『봉안제참재록』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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