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7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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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烈祠祭享 |
영어의미역 | Religious Service of Chungnyeolsa Shrine |
이칭/별칭 | 춘향제·추향제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의례/제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 345[안락동 838]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유영옥 |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 충렬사에 모신 임진왜란 때 순절한 93위의 영령들에게 지내는 제사.
[개설]
「충렬사제향」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부산 지역에서 순절한 동래 부사 송상현(宋象賢)[1551~1592], 부산진첨사 정발(鄭撥)[1553~1592], 다대진첨사 윤흥신(尹興信)[?~1592]을 비롯하여 관(官)·군(軍)·민(民)의 영령 93위를 충렬사에 봉안하고 매년 봄·가을에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춘향제(春享祭)·추향제(秋享祭)’라고도 한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에 있는 충렬사에 봉안된 93위에는 관장(官長)에서부터 무명의 촌민·촌녀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며, 의녀 4위를 모신 의열각(義烈閣)에는 여성 제관(祭官)에 의해 제례가 이루어지는 점도 독특하다. 사당에 안락서원이 병설되어 있어 선열의 충정과 학덕을 전승하고 있음도 「충렬사제향」의 한 특징이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속에서도 그 중요성 때문에 훼철되지 않고 지금까지 400여 년간 면면히 전승해 온 전통 제례법에 의해 제향을 올리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원래 충렬사에는 충렬공(忠烈公) 송상현 부사와 충장공(忠壯公) 정발 장군의 신위를 비롯하여 총 40위를 모셨으나, 1976년 3월 충렬사 정화 사업으로 낡은 사우(祠宇)가 헐리면서 임진왜란 당시에 순절한 의인(義人) 75위가 모두 봉안되었다. 1991년 5월 부산광역시 문화재위원회에서 임진왜란 당시 부산 지역 전투에 참가하여 원종공신(原從功臣)의 녹권(錄券)을 받은 자 중, 1976년 충렬사 정화 사업 때까지 조사 미비로 누락된 66명에 대하여 공적이 확인된 13인을 합사하기로 의결하였다. 또 1996년에는 3위를 추가로 합사하고, 2003년과 2007년에 각각 1위를 더 추배(追配)하여, 지금은 모두 93위를 봉안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93위의 신위는 충렬사 본전(本殿)과 의열각에 봉안되어 있다. 본전은 충렬사의 중심이 되는 본당 건물로서 충렬사 경내의 가장 높은 곳에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중앙의 수위(首位)에 송상현·정발·윤홍신의 신위가 모셔져 있고, 동서로 배위(配位)·종위(從位)의 순으로 총 89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의열각은 본전보다 한 단 아래에 동향으로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동래성에서 기왓장으로 왜적과 싸웠던 무명의 두 의녀(義女), 당시 송상현 부사와 정발 장군을 따라 순절한 송상현의 애첩 금섬(金蟾)[?~1592]과 정발의 애첩 애향(愛香)[?~1592]의 위패 등 모두 4위가 모셔져 있다.
[절차]
제향 2~3일 전에 충렬사 내외를 청소하고 제기(祭器)와 제수(祭需)를 준비한다. 제향 전날 희생(犧牲)을 잡는 감생례(監牲禮)를 행한다. 희생은 소·돼지·양을 쓰는데, 근래 「충렬사제향」에는 주로 돼지를 잡아 쓴다.
당일의 제향은 홀기(笏記)에 따라 진행하는데, 홀기에는 152회 동작의 제례 절차가 기록되어 있다. 본전의 제향은 개제 선언→ 제관 재배→ 참례자 배례→ 분향[수위전에는 헌관, 배위전과 종위전에는 분헌관이 분향]→ 헌작[수위전에는 헌관, 배위전과 종위전에는 분헌관이 헌작]→ 독축→ 대통령 헌화와 분향→ 추모사→ 참례자 분향→ 제관 재배→ 참례자 배례→ 폐제 선언→ 분축 순으로 진행된다. 의열각의 제향은 개제 선언→ 제관 재배→ 참례자 배례→ 분향[본전의 배위전과 종위전에 분향할 때 분향]→ 헌작[본전의 배위전과 종위전에 헌작할 때 헌작]→ 독축[본전에서 독축할 때 분헌관이 향상 앞에 부복함]→ 참례자 분향→ 제관 재배→ 참례자 배례→ 폐제 선언의 순서로 진행된다.
제관은 초헌관(初獻官), 아헌관(亞獻官), 종헌관(終獻官), 분헌관(分獻官) 3인, 집례(執禮), 대축(大祝), 진설(陳設), 알자(謁者), 관세(盥洗), 봉향(奉享) 2인, 봉로(奉爐) 1인, 사준(司尊) 3인, 봉작(奉爵) 4인, 전작(尊爵) 4인, 학생(學生) 2인, 장찬(掌饌)·찬인(贊引)·찬창(贊唱) 각 1인이다. 제관은 안락서원 역대 원장의 회의에서 결정하는데, 한 문중에서 2인 이상의 제관을 천거하지 않으며, 춘향제관이 다시 추향제관이 되지 않도록 천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복은 헌관·집례·대축·학생은 백색 도포(道袍)에 갓을 쓰고, 그 밖의 제관은 흑색 도포에 유건(儒巾)을 쓴다. 제기는 2변(邊), 2두(豆), 1보(簠), 1궤(簋) 등 모두 15기를 사용하며, 기타 작(爵), 향합(香盒), 향로, 촛대 등이 있다.
제수는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날것을 사용한다. 좌변(左邊)에 녹포(鹿脯), 우변(右邊)에 녹해(鹿醢)를 담는데, 요즘은 녹포 대신 우포(牛脯)에 어포(魚脯)를 함께 담아 쓰며, 녹해 대신 쇠고기 날것 또는 돼지고기에 조개를 곁들인다. 좌두(左豆)의 율황(栗黃)은 밤·호두·은행·잣 같은 3겹 껍질의 과일을 쓰며, 우두(右豆)의 청저(菁菹)는 잎이 약간 달린 무와 약 10cm 길이로 썬 미나리와 파를 날것으로 놓는다. 보도(簠稻)와 궤서(簋黍)는 목합(木盒)에다 함께 담는다. 희생으로 잡은 돼지의 머리[豕牲]는 수위(首位)에만 진설한다.
[축문]
단기 [모]년 [간지] [모]월 [간지]일에 후학은 감히 행동래부사 증좌찬성 시충렬공과 행부산첨사 증좌찬성 시충장공과 행다대첨사 증병조참판 윤공께 밝게 고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공자께서는 ‘살신(殺身)’이라 하셨고 맹자께서는 ‘사생(捨生)’이라 하셨으니, 의로운 절의가 늠름하여 100세까지 아름다운 명성이 들리옵니다. 이에 중정일을 맞아 삼가 희생과 폐백과 술과 자성(粢盛) 등 여러 제수를 진설하여 밝게 올리니, 동래부에서 순절하신 여러 공들과 부산진에서 순절하신 여러 공들과 부산포 해전에서 순절하신 여러 공들과 다대포에서 순절하신 여러 공들과 임진년에 궐기하여 적을 토벌하신 공신들과 임진년에 궐기하신 수영의 의롭고 용감한 배위들께서는 부디 흠향하소서. 충렬사 안락서원[維檀君紀元(某)年歲次(干支)(某)月(干支)朔(干支)日 後學 敢昭告于 行東萊府使贈左贊成諡忠烈公 行釜山僉使贈左贊成諡忠壯公 行多大僉使贈兵曹參判尹公. 伏以子曰殺身 孟曰捨生 義節凜凜 百代英聲. 玆値仲丁 謹以牲幣醴齊粢盛庶品 式陳明薦 以東萊府殉節諸公 釜山鎭殉節諸公 釜山浦海戰殉節諸公 多大浦殉節諸公 壬辰起討賊功臣 壬辰起水營義勇配 尙饗. 忠烈祠安樂書院].
[현황]
1979년 2월 2일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충렬사제향」은 크게 정시제와 임시제로 나눌 수 있다. 정시제는 일정한 기일을 정하여 올리는 제전으로 향사와 삭망제가 있다. 임시제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올리는 제전으로 봉안제(奉安祭), 이안제(移安祭), 추향고유제(追享告由祭), 예성제(醴成祭) 등이 있다. 가장 중요한 제례는 매년 2회 봄·가을로 거행하는 정시제로, 춘향(春享)은 음력 2월 중정일(中丁日)에 거행되고 추향(秋享)은 음력 8월 중정일에 거행된다. 개정된 제례 의식에 의해 부산광역시장을 헌관으로 하여 지내는 제례는 양력 5월 25일에 거행한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