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715 |
---|---|
한자 | 釜山東三洞貝塚出土- |
영어의미역 | Pairs of Earrings Unearthed from a Shell Mound in Dongsam-dong in Busan |
이칭/별칭 | 부산 동삼동 패총 출토 이식,동삼동 패총 출토 귀걸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750-3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하인수 |
[정의]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의 귀걸이.
[개설]
정주 생활과 간석기[마제 석기], 토기의 사용을 특징으로 하는 신석기 시대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결과 여러 가지 문화가 창출되고 전개되었다. 특히 신체 장식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여러 가지 장신구가 출현 유행하였다는 점에서 한국 장신구 문화의 조형을 이룬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신석기 시대 귀고리[이식(耳飾)]는 주로 옥석이나 흙을 소재로 제작되었다. 아직 출토 양이 매우 적고 일부 한정된 지역에서만 발견되고 있어, 유행 시기와 착장자의 성별, 출현과 소멸에 이르는 과정, 착장자의 사회적 성격 등에 관해서는 불명한 점이 많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이식의 형식이나 재질, 사용 시기 등이 일본 열도와 중국의 그것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동아시아 신석기 문화의 지역 간 교류 실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부산 동삼동 패총 출토 귀걸이는 1999년 5월 17일부터 같은 해 8월 14일까지 부산시립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한 바 있으며, 현재는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귀걸이의 형태는 착장 방식에 따라 고리형의 결상 이식(玦狀耳飾)과 삽입형의 이전(耳栓)의 두 형식으로 나뉜다. 이전은 결상 이식과 달리 귓불에 구멍을 뚫어 삽입하여 귀를 장식하는 형식이며, 재질은 모두 흙을 구워 만든 토제품이다. 형태는 원반형을 이루며, 측면에는 착장하기 위한 홈이 마련되어 있다. 표면에 가장자리를 따라 점열문과 겹고리무늬[동심원문(同心圓文)]를 장식한 것도 있다. 크기는 직경 4~9㎝ 정도이다.
결상 이식은 옥석을 둥글게 가공하여 귓불에 구멍을 뚫어 거는 고리형으로, 삼국 시대 금속제 이식과 매우 유사하다. 부산 동삼동 패총의 결상 이식은 절반가량이 결실되었으나 크기는 3.6[복원 구경]x3.0㎝ 정도로 추정된다.
[특징]
토제 이전은 부산 동삼동 패총 출토품을 비롯한 김해 수가리 조개더미, 울산 신암리 유적, 경주 봉길리 유적의 것이 알려져 있으며, 시기는 중기[기원전 3,000년 전후]에 속한다.
결상 이식은 선사 시대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중국 등 동아시아에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사촌리 유적, 부산 동삼동 패총, 고성 문암리 유적(高城文巖里遺蹟)[사적 제426호], 안도 조개더미, 선진리 유적, 처용리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시기는 출토 층위로 보아 신석기 중기[기원전 3,000년 전후]로 생각되나 고성 문암리 유적의 사례로 보아 시기가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의의와 평가]
신석기 시대 이식은 집단 성원의 개성 표현으로 착용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출토 양상이나 재질의 희소성 등으로 보아 사회적으로 혹은 집단 내에서 특정한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이 착용하였을 가능성도 높다고 판단된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 동삼동 패총 출토 귀걸이는 신석기 시대 해안 지역민의 장신 문화와 그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