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6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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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彦樹院 |
영어음역 | Eonsuw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두구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정희 |
[정의]
조선 시대 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두구동에 있던, 관원이 공무로 다닐 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국가가 운영한 숙박 시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 시대 중요한 교통로, 통신 시설로에는 역원(驛院)이 있었다. 역은 주요 도로 약 12㎞[30리]마다 설치되어 마필과 역정(驛丁)을 두어 공무 여행자에게 말과 숙식을 알선하며 진상 등 관물의 수송을 담당하였다. 또한 공무 담당자가 중앙과 지역을 이동하는 데는 며칠에서 수십 일이 걸렸으므로, 중앙 정부에서는 이들의 숙식 마련을 위해 일종의 국립 여관인 원(院)을 설치하였다. 언수원(彦樹院)은 이 같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관련 기록]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1481]에 “언수원은 현의 북쪽 15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언수원은 부(府)의 북쪽 20리에 있다”라고 되어 있다.
[변천]
언수원의 위치는 『동국여지승람』과 『동래부지』에 실려 있는데, 그 위치가 각기 다르다. 『동국여지승람』에서 언수원의 위치는 “[동래현]의 북쪽 15리”로 되어 있는데, 여기는 소산역(蘇山驛)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소산역이 있었던 곳이 지금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동(仙洞)임을 고려하면, 언수원은 이곳에 있었던 것이 된다.
그런데 언수원의 위치가 『동래부지』에는 “부의 북쪽 20리”에 있다고 하여 “북쪽 15리”에 있던 소산역과는 5리의 차이가 난다. “부의 북쪽 20리”인 지점은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조정 부곡(調井部曲)이 있었던 지역으로, 지금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이다. 언수원의 위치가 다소 차이가 나는 이유가 언수원이 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동에서 두구동으로 옮겨졌기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또한 처음에는 중앙에서 언수원에 관료를 파견하여 공무 담당자의 숙식과 관물의 수송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1445년(세종 27)에 법규가 바뀌어 원의 근처 주민을 원주(院主)로 삼아 이를 관리하도록 하였다. 이에 부산의 언수원도 같은 적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원의 사용자가 제한되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퇴락하였다. 이후 각 관·역 혹은 민간에서 공무 담당자의 숙식을 담당하게 되면서 언수원도 18세기 전반에 폐지되었다.
[의의와 평가]
언수원의 시대적 역할과 소멸을 통해 부산 지역 교통 시설을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언수원의 정확한 위치 비정이 이루어진다면, 역과의 관련을 통해 부산 지역 교통 시설의 실상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