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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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甘浦萬戶營 |
영어의미역 | Manhoyeong Garrison in Gamp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관부(전통 시대) |
지역 | 부산광역시 수영구 민락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심민정 |
[정의]
조선 후기 부산광역시 수영구 민락동에 있던 수군 만호영.
[설립 경위 및 목적]
조선 시대 좌수영에는 무관 정3품의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가 주재하였고, 그 관하에는 원래 1개의 검사영[거진], 즉 부산포진과 10개의 만호영이 있었다. 다대포[동래]·해운포[동래]·서평포[동래]·두모포[울산]·개운포[울산]·서생포[울산]·염포[울산]·포이포[영해]·감포[경주]·마포[영포]·축산포[영해]·칠포[흥해]가 만호영이었다.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영 휘하의 감포 만호영(甘浦萬戶營)은 원래 경주의 감포에 있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해상 방어에 대한 부산 지역이 중요함을 인식하여 감포 만호영을 부산 지역으로 이전 설치하였다.
[조직 및 담당 직무]
『동래부지(東萊府誌)』 관방(關防)조에 의하면, “감포 만호영은 부의 남쪽 10리에 있고, 수군만호가 있다”라고 하였다. 감포 만호영의 수장은 무관 종4품으로 보유한 병선은 전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伺候船) 2척이었다. 그 외에 감관(監官), 지곡관(知穀官), 교관(敎官), 토사부(土射夫), 포수(砲手), 격군 중 뛰어난 자[能格軍], 분방 사부(分防射夫), 방군(防軍) 800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관련 기록]
『동래부지』 관방조에 감포의 임무와 군솔이 제시되어 있고, 『만기요람(萬機要覽)』 군정편 해방조에는 경상 감사 민백상(閔百祥)의 상소로 감포 등이 혁파되는 상황이 서술되어 있다.
[변천]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영 휘하의 감포 만호영은 경주의 감포에 있었다. 감포 만호영은 임진왜란 이후 부산 지역의 해상 방어를 공고히 하기 위해 부산포로 이전하였다가, 그 뒤 다시 동래 남촌[현 부산광역시 수영구 민락동]으로 옮겼다. 1751년(영조 27) 감포 만호영을 폐지하였다.
[의의와 평가]
울산 지역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던 수군 병력은 임진왜란 이후 부산 지역의 중요성이 재인식되면서 많은 수의 이동이 이루어졌다. 감포 만호영은 부산으로 이전한 이후 영조 대에 혁파되기는 하였으나, 임진왜란 이후 부산 지역이 해상 방위상 중요하였음을 인식하게 하는 수군 만호영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