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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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甘田洞- |
영어의미역 | Poplar Tree District in Gamjeon-dong |
분야 | 역사/근현대,생활·민속/생활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양미숙 |
[정의]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일대에 있었던 매매춘 지대.
[개설]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은 일제 강점기에는 한적한 농촌이었다. 감전동 교차로의 북부산세무서 주위 일대는 샛강의 포구로 감동포라 불렸는데, 이곳은 낙동강으로 통하는 수로가 있어 배가 드나들었다. 부근에는 낙동강의 신선한 생선회를 파는 술집이 몇 채 있었는데, 경부선 초량~구포 구간 철로 공사에서 일하는 공사판 노동자를 상대로 하는 술집이었다. 이 술집 주위에 포플러 나무들이 있었는데, 이곳을 자주 찾던 일본인들이 이 일대를 ‘뽀뿌라마치’라고 불렀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도 ‘뽀뿌라마치’라 불리고 있다.
[건립 경위]
1960~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부산시 사상구 감전동에 사상 공업 단지가 조성되었다. 이에 공단 주변에 유흥가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농촌을 떠난 많은 여성들이 도시 노동자가 되었으나 생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과 장시간 작업 등 열악한 노동 환경과 빈부의 격차로 한계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여성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매춘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고, 남성 노동자들은 장시간 작업으로 지친 몸으로 술과 성적 쾌락에 빠지게 되었다. 이렇게 감전동의 뽀뿌라마치는 산업화로 과정에서 형성된 새로운 매매춘 지대의 한 사례가 되었다.
[변천]
1902년 초량~구포 경부선 철로 공사로 생겨난 감전동 일대의 주점은 1921년 11월 경부선 사상역이 생기면서 더욱 번창하였다. 6·25 전쟁으로 미군 고사포 부대가 인근에 주둔하면서 미군을 상대로 하는 주점이 생겨나면서 이 일대는 유흥가로 변해갔다. 1960~1970년대 사상 공업 단지가 조성되면서 이 일대는 점차 매매춘 지대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80년대 이후 사상 공업 단지 내 공장의 시외 이전과 이에 따른 노동자 수의 감소로 감전동 뽀뿌라마치도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후반의 매매춘 업소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으로 대부분의 업소가 영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현황]
완월동, 텍사스촌과 함께 부산의 대표적인 매매춘 지대였던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일대는 2005년 이후 일반 가정 주택이 들어서는 등의 변화가 진행되면서 매매춘 지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