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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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谷洞東院- |
영어의미역 | Site of Geumgok-dong Dongwon |
이칭/별칭 | 금곡동 동원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금곡동 866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한정훈 |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고려 및 조선 시대의 역원(驛院) 터.
[위치]
금곡동 동원 터는 금정산 서쪽 자락의 말단 구릉으로, 낙동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한다. 현재 이곳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2, ‘양산군 역원 조’에 실린 동원 터였을 것으로 비정된다. 이는 조사 지역 일대가 동원 마을에 해당되고, 양산군 남쪽 22리에 동원(東院)이 있다[동원 재군남이십이리(東院在郡南二十二里)]는 문헌 기록과도 내용이 일치하고 있는 점을 근거로 하고 있다. 동원 남쪽에는 이전에 동원 고개로 불리던 곳이 있는데, 이곳은 이계필 청덕휼민비(李啓弼淸德恤民碑)가 있던 곳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2004년 경남문화재연구원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고려 시대에 해당하는 문화층임을 확인하였다. 금곡동 동원 터는 일반 거주 지역에서 벗어난 지점에 낙동강 본류 및 주 간선 도로와 인접해서 서향의 건물 터가 조성되었고, 온돌이 확인되지 않아 일반 거주 시설로 보기는 어렵다. 또한 사찰과 관련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절터였을 가능성도 낮다. 출토 유물의 격이 상당히 높은 점을 보아 공공적 성격과 기능을 가진 건물 터, 즉 동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원은 낙동강 동쪽에 설치된 원(院)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건물 터 2동, 담장 석렬(石列) 2개소, 석조 유구(石造遺構) 1기, 석렬 2기 등이 확인되었다. 건물 터는 주 건물과 보조 건물이 평면 ┌자 형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주 건물은 서향, 보조 건물은 남향이며 모두 정면, 측면 3칸 규모이다. 건물 터 중앙에는 출입 시설인 계단이 마련되어 있다. 토기, 도기, 기와, 청자, 분청사기 등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지금까지 문헌사 방면에서는 역원 제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였으나, 실제 역원으로 사용된 건물 터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는 그 사례가 매우 희소하므로, 금곡동 동원 터가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당시 동래, 구포, 물금, 양산을 잇는 교통로 가운데 수로가 물자를 운송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을 확인하는 유적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