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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895
한자 菉山水門
영어의미역 Noksan Floodgate
이칭/별칭 녹산 제1 수문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지명/시설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성산 마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상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수문|낙동강 하굿둑 배수 갑문
면적 112,450㎡[녹산 제1 배수문]|31,100㎡[녹산 제2 배수문]
준공 시기/일시 1934년 4월연표보기 - 준공
개칭 시기/일시 1992년 6월연표보기 - 녹산 수문에서 녹산 제1 배수문으로 개칭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2년 6월 - 녹산 제2 배수문 준공
최초 설립지 녹산 수문 - 경상남도 김해군 녹산면 성산리
현 소재지 녹산 제1 배수문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성산 마을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성산 마을에 설치된 수문.

[개설]

녹산 수문은 낙동강 하류 서낙동강노적봉(露積峰) 옆에 있으며 1930년경에 낙동강 직선화 공사로 시작하여, 1934년 4월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강과 바다를 가르는 하구둑 수문이다. 녹산 수문은 바다의 짠물을 차단하여 농업용수를 가능하도록 하며 홍수나 여러 날 집수로 수문 안쪽 강물 수위가 바닷물보다 아주 높게 되면 안 강의 강물을 방류하여 농지의 침수를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건립 경위]

녹산 수문이 건립된 이유는 첫째, 대저 취수문으로부터 싱거운 낙동강 물을 받아들여 수문을 이용하여 바다로 나가지 않도록 하고, 이렇게 확보된 농수를 강서들에게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또 수문이 부식되어 벌어진 틈으로 짠물이 새어들어 염도가 높을 때, 대저 취수문으로 낙동강 물을 받아들이고 상대적으로 염도가 높은 녹산 수문 쪽의 물을 바다로 내보내기 위해서이다.

[변천]

녹산 수문의 모자라는 배수 용량을 보강하기 위해 1992년 6월에 노적봉 동쪽에 녹산 제2 배수문을 만들면서 기존의 녹산 수문은 녹산 제1 배수문으로 개칭되었다.

[구성]

녹산 수문은 넓이 10m, 높이 4m의 수문으로 10개의 수문이 연달아 만들어져 배수 면적은 11만 2,450㎡이며 초당 960톤의 물을 바다로 내보낸다. 1992년 6월에 만든 녹산 제2 수문은 넓이 8m, 높이 4m, 6칸 연결 수문으로 배수 면적은 3만 1,100㎡이며 초당 640톤의 물을 바다로 내보낸다. 녹산 제1 배수문과 녹산 제2 배수문에는 수문마다 통제실이 있어 이곳에서 수문 개폐, 수위 조절과 각종 재해에 대한 정보를 서로 주고받아 홍수나 갈수기 물의 양을 조절하고 있다. 대저 취수문과 녹산 수문은 모두 강서구청 농산과에서 통제하고 있다.

[현황]

녹산 수문은 만든 지 오래되어 부식되고 낡은 부분이 많았으나 최근 전면 보수하여 원활하도록 관리하고 있으며 제2 녹산 수문도 역시 강서구청에서 수시로 관리하여 작동에 불편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녹산 수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하구둑 수문으로, 최근에 만들어진 새만금 방조제 수문의 원조라고 할 만큼 시설 공학적, 시설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김해 평야를 이루게 한 중요한 농업 문화재로 보존할 가치가 매우 높다고 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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