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8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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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柄鉉 |
영어음역 | Gim Byeonghyeon |
이칭/별칭 | 청구(靑龜)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사상구 덕포동 404-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선화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병현(金柄鉉)[1925~2008]은 1925년 3월 1일에 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 용동리 441번지[현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용동 441번지]에서 태어났다. 1938년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40년에 은사 허현(許鉉)의 지도로 양중모(梁仲模)·남기명(南基明)·김진훈(金鎭焄)·김일규 등과 함께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독서회에서는 주로 조선의 문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제정 러시아에 대한 폴란드인의 투쟁사 등을 주제로 하는 서적들을 학습하였고 『월간 러시아』와 같은 월간지도 읽었다. 이를 통해 독서회 회원들은 민족적 저항 의식을 다지는 한편 세계사적 흐름과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인식을 넓혔다.
회원들은 1941년 겨울에 독서회의 성격을 강화하여 조선청년독립당(朝鮮靑年獨立黨)으로 개편하였으며, 1942년 봄에 2차 모임을 갖고 본격적인 항일 투쟁에 착수할 준비를 하였다. 이때 김병현은 행동반으로 청소년 훈련과 병기 탄약 제조 등의 임무를 맡았다. 1943년 조선청년독립당은 당원들이 학교를 졸업하면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직접적인 항일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구체적인 작전을 계획하였으며, 김병현은 창원 지역 청년들의 훈련을 담당하였다.
한편 조선청년독립당은 자일회(紫一會), 순국당(殉國黨) 등 다른 항일 단체들과도 연락하면서 광범위한 항일 운동을 전개하려 하였다. 그러나 1944년 7월에 순국당의 조직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면서 8월 초에 김병현을 비롯한 조선청년독립당의 조직원들도 함께 체포되었다. 일제는 동래중학 조선청년독립당 사건을 매우 엄중하게 여겨, 가족 면회도 금지한 채 조사하였다. 이 때문에 김병현은 약 10개월 동안 검찰에 계류된 채 구류되어 있다가, 1945년 6월 병보석으로 가출옥하였다. 2008년 6월 29일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2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