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7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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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調査資料第七輯朝鮮-支那人 |
영어의미역 | Document No. 7: The Chinese in Joseon |
이칭/별칭 | 『조사 자료 제7집 조선의 지나인[調査 資料 第七輯 朝鮮に於ける 支那人]』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월드컵대로 462[초읍동 산51-6]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연지 |
[정의]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일제 강점기 조선 거주 중국인에 대한 조사 자료집.
[편찬/간행 경위]
1920년대 초반 조선에는 많은 수의 중국인[지나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중국인은 저렴한 생활비와 직무에 대한 근면으로 점차 일본인, 조선인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있다고 인식되었다. 그들은 농촌보다 각 도회지 및 근교에 생활 근거를 두고 상업·농업·노동 등 각종 업무에 종사하였다. 따라서 경성부, 인천부, 부산부 등의 각 부(府)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의 상황을 살피면 조선 내 그들의 일반적인 상황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 조선총독부에서, 1923년 말부터 1924년 초에 걸쳐 야마우치[山內] 촉탁을 파견하여 조선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들에 대해 조사한 후 1924년 7월 15일에 『조사 자료 제7집 조선의 지나인[調査資料第七輯朝鮮に於ける支那人]』을 간행하였다.
[서지적 상황]
일제 강점기 부산부립도서관의 비밀 소장 도서로 대출이 금지된 자료였다. 현재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 고문헌실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가로 18㎝, 세로 26㎝ 크기로, 203쪽 분량이다. 일본어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총론에 이어 각 부[경성부, 인천부, 군산부, 목포부, 대구부, 부산부, 마산부, 평양부, 진남포부, 신의주부, 원산부, 청진부] 별로 중국인의 현황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부산부의 경우, 1892년(고종 29)경 중국인이 처음 거주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청일 전쟁 후 쇠퇴하였다가 1898년(고종 35) 청국영사관이 부산에 설치되면서 점차 세력을 회복하고 인구가 증가한 것으로 서술하였다. 1910년(순종 4) 당시 부산 거주 중국인은 50호 356명이고, 1923년 당시는 72호 333명으로, 약 10년간 약간의 부침은 있었지만 큰 폭의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사 자료 제7집 조선의 지나인』은 조선 통치를 위해 필요한 전국 주요 도시의 중국인 현황을 조사한 자료로서, 비록 불충분한 조사라고 고백하고 있지만, 당시 중국인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아 희소성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