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7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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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耕 |
영어음역 | Gim Gyeong |
이칭/별칭 | 김만두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선학 |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서양화가.
[활동 사항]
김경(金耕)[1922~1965]은 1922년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김만두이다. 1940년 일본대학 미술과에 입학하여 수학한 뒤에 징용을 피해 귀국하여 하동의 진교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해방 후 진주와 마산을 거쳐 1949년 이후 부산에 정착하였다.
6·25 전쟁 중인 1953년 부산에서 서성찬(徐成贊)·김영교·임호(林湖)·김종식(金種植)·김윤민(金潤玟) 등과 동인 토벽회(土壁會)를 결성하여 사실적인 경향의 작품을 선보였다. 토벽회가 개최한 토벽전에 3회에 걸쳐 「소」·「소녀와 달」·「항아리와 소녀」·「소와 사나이」·「여인」 등 향토색 짙고 정감이 넘쳐흐르는 작품을 출품하였다. 환도 후에는 박고석·유영국·이규상·정규 등과 모던아트의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추상으로 전향, 생명의 강인함을 표현하려 하였다. 「모자상」 등이 알려져 있다. 1955년에 개인전[미화당 백화점]과 김경 유화전[망향 다방] 등을 연달아 열었으며, 1956년 7월과 1964년에도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1965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옥영식은 “김경의 작품은 향토적 주제 의식을 짙게 드러내는 절제된 형상의 붉은 황토빛의 「소」가 대표적이고, 삶의 애환이 서린 「명태」·「인물」 등에서 표현성 짙은 화풍을 이루었으며, 점차 간결 추상화된 조형성은 그 후 추상 미술에 경도하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시우(李時雨)는 김경이 43세에 요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화면 가득히 넘쳐흐르는 우리 풍토의 흙 내음, 토벽과 같은 감촉을 주는 뜨거운 마티엘과 포름의 내적인 긴장과 엄격에서 오는 감동이 짙은 작품을 즐겨 그렸던 비운의 작가였다.”라고 하였다. 김경은 부산 화단을 일궈 낸, 부산의 초기 화단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대표적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저술 및 작품]
대표 작품으로 「고산월량(高産月亮)」[1955]·「쌍계」[1956]·「작품 60-7」[1960]·「기원」[1967]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66년 유작전[중앙 공보관], 1978년 9월 유작전[부산 수로 화랑], 1982년 유작전[조선 화랑]이 개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