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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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韓僧侶聯合會宣言書 |
영어의미역 | Declaration of the Nationwide Association of Buddhist Monks|The Manifesto of the Korean Buddhist |
이칭/별칭 | 「승려 독립 선언서」 |
분야 | 역사/근현대,종교/불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상길 |
[정의]
부산 범어사의 오성월(吳惺月) 등 12명의 승려가 1919년 11월 15일에 발표한 독립 선언서.
[개설]
대한승려연합회는 3·1 운동 직후 상해 임시 정부를 배경으로 대일 항쟁을 전개한 불교계의 독립운동 단체이다. 이 단체를 결성한 승려들은 국내외를 아우르는 불교 항일 단체를 결성하고, 전국적인 사찰을 배경으로 승려들의 대일 항전을 기도하였다. 그들은 3·1 운동 당시 중앙학림, 전국 강원, 사찰 등에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다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립 운동의 지속을 모색했는데, 이 과정에서 불교의 독립운동에 대한 입장, 논리, 대응책 등을 선언서로 작성한 것이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大韓僧侶聯合會宣言書)」이다. 흔히 「승려 독립 선언서」라고도 부른다.
[제작 발급 경위]
1919년 10~11월경 중국 상하이에 망명한 항일 승려들이 작성을 주도하였다. 대한승려연합회는 불교의 독립운동을 본격화하기 위해 내세운 임의 단체로 추정되며, 현재는 더 이상의 자료가 없다. 선언서의 문안을 작성한 인물은 확인되지 않으나 신상완(申尙玩)[1891~1951], 혹은 백초월(白初月)[1878~1944]로 추정한다. 당시 선언서 작성을 주도하였던 승려들은 선언서에서 구현한 불교 독립운동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하여 의용 승군제와 기밀부 등을 조직하여 전국 사찰과 승려들을 승군 및 항일 불교의 대열로 편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형태]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는 한글[국한문], 한문, 영문의 3개 국어로 별도 기술되었고 활판 인쇄로 만들어졌다. 한문은 ‘宣言書’로 영문은 ‘The Manifesto of the Korean Buddhist’로 되어 있다. 영문 선언서에는 대표자 법명도 영어로 기재하고 있다. 선언서는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라는 제목이 쓰인 별지와 ‘선언서’라는 제목으로 된 본 내용의 선언서로 작성되어 있다. 말미에 ‘대한민국 원년 11월 15일 대한승려연합회 대표자 오만광(吳卍光), 이법인(李法印) 김취산(金鷲山) 강풍담(姜楓潭), 최경파(崔鯨波), 박법림(朴法林), 안호산(安湖山), 오동일(吳東一), 지경산(池擎山), 정운봉(鄭雲峯), 배상우(輩相祐), 김동호(金東昊)’라고 되어 있다. 오만광은 오성월[당시 범어사 주지], 이법인은 이회광[당시 해인사 주지], 김취산은 김구하[당시 통도사 주지], 지경산은 김경산(金擎山)[범어사 고승]이다. 즉, 대한민국의 승려 대표자 12인 중에 범어사와 통도사의 승려 4명이 포함되어 있다.
[구성/내용]
내용은 다음과 같은 6개의 항목으로 요약된다. 첫째, 한국에 있는 7,000명의 승려는 일본의 통치를 배척하고, 대한민국 독립의 당위성을 국내의 동포와 세계에 천명한다. 둘째, 불교의 근본이념을 평등과 자비라고 전제하고 일제는 불법에 어긋난 적으로 단정하였다. 일본이 표면으로만 불법을 숭상하고, 침략주의와 군국주의에 경도되어 평화를 교란하고 은혜를 배반하였으며, 평화적인 3·1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것 등을 그 실례로 지적하였다.
셋째, 불교계는 선언서를 발표하기 이전에도 민족 대표로 참가한 사실, 심신을 바쳐 독립 운동에 뛰어든 불교도가 다수였음을 밝혔다. 넷째, 일본의 야만적인 식민 통치를 중단시키는 일은 도탄에 빠진 중생의 고통을 좌시하지 않았던 역대 조사들의 유풍임을 강조하였다. 불교는 역대로 국가로부터 보호받으며 발전해 왔으므로 국가와 불교는 불가분의 인연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불교가 독립 항쟁에 나서는 것은 국민 된 도리라고 하였다.
여섯째 일본은 한국의 역사, 문화, 전통을 무시하는 일본화 정책 및 법령으로 한민족을 전멸시키고자 하였다. 그 결과 불교도 그에 희생되었다고 인식하였다. 이에 불교의 자유를 잃어버리고, 역대 조사의 유풍이 사라져 결과적으로 불교의 근원과 생명이 멸절되었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연유에서 불교는 일본과 싸울 수밖에 없음을 천명하였다. 나라의 자유와 독립을 완성하고, 동시에 불교의 일본화 및 멸절의 구렁텅이에서 구하기 위하여 7,000명의 승려들이 일어섰고, 죽음을 불사하여 나라에 보답하겠다는 발원과 의로운 피로써 싸우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는 3·1 운동 직후 불교계에서 전개되었던 독립 운동을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 기념비적인 선언서이다. 선언서에는 불교계가 항일 민족 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음을 논리적으로 제시하였다. 그 이념은 불교의 대승 정신, 나아가서는 근대적인 민족의식으로서 이를 민족 불교론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 불교론은 근대 불교가 독립운동에 나서야 하는 당위성을 구현하는 이념으로서 불교 내부의 불교 대중화론과 불교 외부의 불교 사회화론이 결합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