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6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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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皓民 |
영어음역 | Gim Homin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창욱 |
[정의]
부산에서 활동한 성악가이자 음악 교육자.
[활동 사항]
김호민(金皓民)[1912~1984]은 1912년 4월 9일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났다. 일본 동양음악학교를 졸업한 엘리트로 성악가[테너]가 되었다. 진주사범학교와 부산여자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구포중학교·경남여자상업고등학교·마산여자중학교·진해 동고등학교의 교장을 지냈다. 또한 부산음악교육연구회와 부산음악가협회의 회장을 맡아 부산 음악계에 커다란 공적을 남겼다. 부산음악가협회가 발족된 것은 1960년 8월 27일로 김호민은 대표 위원과 섭외를 맡았다. 그해 11월 20일에 경남음악교육연구회 임원 개선에서 회장이 되었다.
1965년 11월 23일에는 한국음악협회 부산지부[현재 부산음악협회]의 창립총회가 부산교육위원회 회의실에서 이루어졌는데, 김호민은 여기서 지부장으로 선출되었다. 부산음악협회의 초대 회장이 된 셈이다. 부산 음악가 23명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는 부지부장에 김진문(金鎭文)·하규한(河奎漢), 간사에 최인찬(崔仁讚)·제갈삼(諸葛森)·배종구(裵鍾求)·김석준(金錫俊)·이은숙(李恩淑)·신현덕(申鉉德), 감사에 오일석(吳一石)·최덕해(崔德海) 등이 임원진으로 선임되었다. 당시 작곡가이자 음악 평론가였던 유신(劉信)은 성악가로서 김호민에 대해서 ‘탄력 있고 극적인 테너’로 평가하였고, 서울대학교 이인영(李仁榮) 교수는 ‘중앙 무대에서도 결코 손색이 없는 훌륭한 테너’라고 회고한 바 있다.
테너 가수로서 김호민은 다양한 연주 무대를 가졌다. 1948년 4월 16일 경남 도립 극장에서 부산관현악단 제2회 연주회에 찬조 출연하였고, 1949년 1월 ‘노래하자회’ 음악회에 특별 출연을 비롯하여, 1949년 9월 16일부터 17일까지 이틀에 걸쳐 매 2회 공연된 ‘실내악을 주로 한 음악 연주회’[부산 미국 공보원]에서 독창으로 가곡 「금잔디」[이건우 작곡]와 오페라 아리아 「가여운 아이다여」[베르디]를 강수범의 반주로 노래하였다. 1953년 6·25 전쟁 중에 만들어진 문화 영화 「낙동강」의 음악은 윤이상(尹伊桑)이 작곡하고 임원식(林元植)이 지휘하여 녹음되었는데, 이때 그는 합창대를 지휘하였다.
한편 1950년 7월 부산음악가협회는 이주홍(李周洪) 원작·최술문(崔述文) 작곡으로 오페라 「춘향전」을 계획하였는데, 여기서 김호민은 주역 이도령 역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6·25 전쟁의 발발로 오페라 「춘향전」의 공연은 무산되고 말았다. 1959년 10월 29일 제일 극장에서 열린 ‘태풍 이재민 구호 음악·무용 연합 대공연’과 그해 12월 20일 미화당 음악실에서 개최된 자선 음악회, 1960년 부산음악가협회 제2회 공연 ‘가곡의 밤’, 1964년 4월 28일 신신 예식장에서 열린 딸 김화자의 피아노 독주회에도 찬조 출연하여 비제의 오페라 아리아 「꽃노래」를 불렀다. 이처럼 김호민은 교직에 종사하면서 성악가로서 부산과 경상남도를 넘나들며, 각종 크고 작은 음악회에 출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