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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579
한자 金南倍
영어음역 Gim Nambae
이칭/별칭 양 할아버지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자성로133번길 10[범일동 830]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이영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화가
성별
대표경력 부산미술협회장
출생 시기/일시 1908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3년 - 조선 미술 전람회 입선
활동 시기/일시 1944년 - 조선 미술 전람회 입선
활동 시기/일시 1946년 - 3·1절 기념 미술제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46년 - 경남미술연구회 결성
활동 시기/일시 1947년 - 경남 미술 연구회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48년 - 제1회 부산 미술 전람회 초대작가이자 심사위원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50년 - 혁토사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53년 - 토벽회 동인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58년 - 부산미술협회 회장
활동 시기/일시 1958년 - 제1회 경남 미술전 심사 위원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59년 - 김남배 동양화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59년 - 제40주년 3·1절 기념 예술제 출품
활동 시기/일시 1959년 - 부산 미술 협회전 출품
활동 시기/일시 1960년 - 3·1절과 광복절 기념전 출품
활동 시기/일시 1960년 - 제9회 동명 서화원전에 출품
활동 시기/일시 1961년 - 제10회 동명 서화원전에 출품
활동 시기/일시 1962년 - 동명 서화원전에 출품
활동 시기/일시 1962년 - 5·16 혁명 1주년 기념 예술전에 출품
활동 시기/일시 1962년 - 미국 하와이로 이주
몰년 시기/일시 1980년연표보기 - 김남배 사망
출생지 경상남도 김해시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거주|이주지 미국 하와이
활동지 부산광역시

[정의]

부산에서 활동한 화가.

[활동 사항]

김남배(金南倍)[1908~1980]는 1908년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에 부산일보사[현 부산일보사와는 무관]가 주최한 공모전인 부산 미술 전람회에서 특선하였으며, 1943년과 1944년에 조선 미술 전람회에서 두 차례 입선하였다.

김남배는 유화 그림을 배워 일가를 이룬 후에 수묵화의 세계로 빠져든 실험적인 예술가이다. 한 살 터울의 화가인 서성찬(徐成贊)[1907~1958]과 쌍벽을 이루었는데, 서성찬이 정물화로 명성을 얻었다면, 김남배는 양(羊) 그림으로 일가를 이룬 ‘양 할아버지’로 불렸다. 김남배는 1930년대 말에 결성된 부산 지역의 동인 그룹 춘광회(春光會)의 창립 멤버로서, 서성찬·양달석(梁澾錫)·우신출(禹新出)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46년에는 서성찬·양달석·우신출 등 춘광회 멤버를 비롯하여, 해방 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종식(金種植), 김윤민(金潤玟)과 함께 ‘3·1절 기념 미술전’에 참여하였다. 해방 후 김남배는 부산역 인근에서 백양 다방을 운영하면서 부산과 경상남도 지역의 미술가들에게 전시 공간을 제공하였는데, 백양 다방이 바로 1946년 경남미술연구회가 결성된 현장이었다.

경남미술연구회의 김남배서성찬·우신출·김윤민·김원갑 등의 부산 작가들은 물론이고, 마산의 이준·이림·임호(林湖), 통영의 전혁림(全赫林)을 비롯하여 김해·진주 등의 미술가들과 함께 기존의 미술 협회와는 차원이 다른 전문적인 미술가 그룹을 조직하였다. 이듬해인 1947년 경남미술연구회는 ‘제1회 경남 미술 연구회전’을 열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0년에 경남미술연구회는 명칭을 혁토사(爀土社)로 고쳐 부르면서, 사진 분야를 포괄하는 그룹으로 발전하였다. 1948년 김남배는 민주중보사가 주최하는 ‘제1회 부산 미술 전람회’에 초대 작가 겸 심사 위원으로 참여하여 젊은 작가들을 미술계에 등단시키는 데 일조하기도 하였다.

1953년부터 김종식·김경(金耕)·임호·김영교·김윤민·서성찬 등과 함께 부산 지역 화단의 구심점 역할을 한 토벽사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1958년에는 부산미술협회 회장을 지냈다. 또 1950년대에 김남배는 경남 미술전[1958년]에 심사 위원으로 참여하고, 3·1절 기념 미술전, 혁토사 동인전, 부산미술협회 초대전, 민주신보 초대전에 출품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남배는 서양화뿐 아니라 동양화로 그림 세계를 넓혀 나갔다.

1959년에 ‘김남배 동양화전’을 시작으로 이후 수년 동안 김남배는 동양화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유화와 수묵화를 병행한 독창적인 화법으로 양 그림을 비롯해 다수의 풍경화·인물화·정물화를 남겼다. 김남배는 인상주의와 표현주의의 서양화풍과 1950년대 이후 수묵화에 심취함으로써 서구와 한국의 회화 전통을 결합하여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노력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1962년 김남배는 미국 하와이로 이민한 이후 꾸준히 활동하다가, 1980년 무렵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술 및 작품]

대표작으로 1946년에 발표한 「양(羊)」[33.5×45.5㎝], 「모정의 염소」[49×60㎝], 1959년에 발표한 「정물」[53×45.5㎝], 1974년에 발표한 「어린 시절」[60.0×45.8㎝], 1977년에 발표한 「계림」[90.9×60.6㎝], 「풍경: 돛단배」[24.5×33㎝]가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옥** <활동 사항>중에서, 1953년에 활동한 내용은 사실과 달리 김종식을 포함한 그들과 동인활동을 하지 않았으므로 삭제되어야 함. 그리고 '토벽사'란 동인은 실제하지 않았음으로 유의하기 바람 201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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