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5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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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愛蓮 |
영어음역 | Gim Aeryeo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163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경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애련(金愛蓮)[1902~?]은 1902년 8월 30일에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163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산광역시 동구 영주동의 부산진공립보통학교[현 부산진초등학교] 재학 중에 3·1 운동을 맞았다. 서울에서 3·1 운동이 시작된 후 부산에서도 3월 11일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의 부산진일신여학교[현 동래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 시위운동이 벌어졌다. 이날의 시위로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들과 시위를 지도한 교사 주경애(朱敬愛)와 박시연(朴時淵)이 경찰에 검거되었다.
이들의 구속 소식을 들은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들은 4월 8일에 다시 만세 시위를 일으켰다. 이때 김애련은 오후 8시경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갑이(李甲伊), 전호봉 등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의 시위는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 50여 명과 인근 주민 수백 명이 합세하여, 좌천동 신도로에서 진행되었다. 이에 일본 경찰이 행진을 제지하고 주동자를 검거할 때 김애련도 체포되었다. 김애련은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 받았으나, 연소자인 이유로 그 해 8월에 가석방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2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