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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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龍九 |
영어음역 | Jo Yonggu |
분야 |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 4790-8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최은정 |
[정의]
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출신의 교육 운동가이자 정치인.
[개설]]
조용구(曺龍九)는 1896년 경상남도 김해군 가락면 제도리 천자도[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에서 출생하였다. 부인 이삼천(李三千)과의 사이에 2남 4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 큰아들은 6·25 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하였다.
[활동 사항]
조용구는 일제 강점기 향리 청소년들의 문맹 퇴치를 위하여 현 삼광초등학교의 전신인 제현강습소(濟眩講習所)를 개설하였다. 또 이를 공립학교로 승격시키기 위해 향리 인사 오상인(吳尙仁), 송백원(宋伯元), 안갑수(安甲守) 등과 힘을 합쳐 노력하여 이를 성사시켰다.
해방 후인 1952년 지방 자치제가 실시되자 조용구는 김해군 가락면의회 초대 의장을 역임하였다. 이때 사재를 희사하여 오늘날 강동동의 동맥인 제도선 도로를 건설했으며, 수리조합 평의원으로 치수와 수리 사업에 앞장서 이를 완수하였다.
효심이 지극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김해향교에서 간행한 『경남 유인지(慶南遺人誌)』에 “천성이 온화하고 교우를 근본으로 삼고 청렴한 윤리를 중요하게 여기며 조상의 덕을 현양한다[天性溫和 敎友爲本 淸倫爲主 顯揚祖德]”라고 등재되어 있다. 1976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