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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판매 거절 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349
한자 -販賣拒絶事件
영어의미역 A scandal of Boycotting the Rise Trad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하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건
관련인물/단체 소전이작|장사방작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76년연표보기 - 부산항 개항
발생|시작 장소 부산광역시

[정의]

개항기 부산 지역 주민들이 일본인에게 쌀 판매를 거절한 사건.

[역사적 배경]

1876년 개항 이후 부산으로 진출한 일본인들은 부산포에 전관 거류지를 설정, 이를 거점으로 자신의 지배권을 사방으로 확대해 나가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지역민들의 항쟁 또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갑신정변 이후로는 지역민들의 항일 저항 의식은 보다 높아져 당시 부산 주재 일본 영사가 “관외 각지는 요즘 인심이 심히 나빠져, 일본인이 통행하는 것만 보아도 투쟁을 하려는 정세”라고 외무성에 보고할 정도였다. 당시의 경상 감사 또한 동래 부사에게 지역민들이 일본인을 능욕하지 못하도록 단속하라고 엄명할 정도로 지역민들의 일본인들에 대한 반감은 고조되어 갔다.

특히 개항기 조선과 일본과의 무역 구조가 쌀의 수출과 면제품 수입을 골자로 하고 있었던 만큼 일본인들은 곡물 수출을 통해 상당한 상업적 이윤을 획득하고 있었는데, 일본인들의 곡물 대량 매입과 아울러 양국 상인 간의 도량형의 차이나 곡물 매입 자금을 미리 지급한 후 이후에 곡물을 인도받는 거래 관행에 기인한 부채 문제 등으로 인하여 일본인과의 곡물 매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선인들의 불만은 더욱 높았다.

[경과]

개항 이후 조선인과 일본인의 곡물 거래 과정에서 상품 대금을 독촉하던 일본 상인들을 농민들이 집단으로 구타하는 등의 사건이 일어나 지역민들의 저항적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특히 1884년 갑신정변 후에는 일본인들에 대한 부산항 지역민들의 항일 저항 의식이 더욱 높아져 그 해가 풍년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에게 쌀을 판매하지 않아 쌀 수출이 격감하기도 하였다. 또한 12월에는 부산항의 일본인 상인 소전이작(小田移作)과 장사방작(裝司倣作)이 상품 대금을 독촉하기 위해 경상남도 고성군 당항포로 갔다가 그 곳의 농민들에게 구타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개항기 일본으로의 쌀 수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조선 내에서는 오히려 쌀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쌀값이 치솟으면서 이를 구매하여 생계를 잇던 빈농이나 무전 농민들의 반발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주요 곡창 지대인 전라도와 경상도를 배후지로 두면서 쌀의 주요 수출항이기도 하였던 부산 지역에서는 이를 둘러싼 갈등이 빈번하였고, 이러한 배경 하에서 발생한 쌀 판매 거절 사건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에 대항한 지역민들의 대표적인 저항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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