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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순절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198
한자 釜山鎭殉節圖
영어음역 Busanjinsungeoldo
영어의미역 Picture of the Patriotic Martyrs in the Battle of Busan-jin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현주 1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760년연표보기 - 동래부 화사 변박이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9월 2일연표보기 - 부산진순절도 보물 제391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부산진순절도 보물 재지정
현 소장처 육군박물관 -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 산230-30
원소재지 충렬사 -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 838 지도보기
성격 회화
작가 변박
서체/기법 견본 채색
관리자 육군박물관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정의]

1760년 변박(卞璞)임진왜란 당시 부산진에서 벌어진 전투 장면을 그린 기록화.

[개설]

「부산진 순절도(釜山鎭殉節圖)」는 1592년(선조 25) 4월 13일과 14일 이틀 동안 부산진에서 벌어진 왜군과의 전투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원래 1709년(숙종 35) 그려졌던 원본이 낡아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게 되자 1760년(영조 36) 동래부 화사(畵師) 변박이 이를 보고 다시 그렸다. 1963년 9월 2일 보물 제39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비단 바탕에 채색화로 크기는 가로 95.9㎝, 세로 144.1㎝이다. 세 개의 비단으로 연결되었는데, 각각의 크기는 19.6㎝, 37.9㎝, 38.7㎝이다.

[특징]

부산진순절도는 높은 곳에서 전투 장면을 내려다보듯 묘사하였는데, 그림 오른쪽 중간에 부산진 성곽이 배치되어 있고 그 주변을 왜병 및 왜선이 빈틈없이 에워싼 모습은 아군과 적군의 심한 전력의 격차를 보여준다. 화면 오른쪽에 부산진성이 위치하고 화면 왼쪽에 왜군들의 배들이 해안가 가득히 군집해 있는 모습을 대각선 구도로 배치하였다. 중앙에 있는 성은 부산진성으로, 그 남문 자리가 현재 일신병원 맞은편 정공단(鄭公壇) 위치이다. 현재 일신병원 맞은편에 위치한 정공단에 있는 비석에는 ‘지즉고진남문야(址卽古鎭南門也)’라고 적혀 있다.

화면 앞쪽에 그려진 성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범천증산왜성을 방어하기 위해 해안가에 지은 왜성을 난이 끝난 후 조선의 성으로 수축한 후기 부산진성의 일부를 그린 것으로 최근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다. 따라서 부산진순절도임진왜란 당시의 부산진성과 그림을 그릴 시기인 1760년대의 지형을 동시에 묘사하는 동도이시법(同圖異時法)을 활용한 역사화로 여겨지기도 한다.

부산진성의 남문에는 흑의 장군으로 불리는 정발(鄭撥)[1553~1592]의 지휘 하에 군사들이 전투에 임하고 있다. 왜군과 격전을 벌이는 부산진 군사들의 장렬함을 강조한 듯 성을 지키는 군사는 얼마 되지 않고 성의 내부는 비어 있으며 화면의 1/2은 배를 타고 진격하는 왜군들과 성으로 돌진하여 성루에 배치된 군사들의 화살에 우후죽순 쓰러지는 왜군의 시체들로 꽉 차 있어, 전쟁의 치열함과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 부산진 군사들의 장엄함이 드러난다.

원산으로 갈수록 윤곽선 없이 선염으로만 묘사하는 산수 표현에서는 화보(畵譜)풍을 벗어난 진경산수의 영향이 감지되며, 성의 뒷산은 가는 윤곽선과 굴곡을 나타내는 선염의 효과를 주면서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또한 성안의 건물들은 묵색과 주색, 백색, 녹색으로 단정하면서 화려하게 표현하였으며 화면 내의 수목(樹木)들은 담채와 점묘법으로 울창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왜선 사이의 선염 표현, 반복되는 선으로 처리된 파도, 담채의 가는 선으로 그린 돛대 등에서는 세밀한 경물 묘사의 특징도 보여준다.

성곽의 묘사와 문루의 표현에서는 다소 평면적으로 역원근법(逆遠近法)[자연적인 시선과 반대로 먼 것은 크게 가까운 것은 작게 그리는 방법]적 묘사가 나타나고 있지만, 객사 바닥 표현이나 기와 처마 부분의 모아진 세선 표현 등에서는 원근감이 잘 나타나 있다. 인물 표현은 「동래부 순절도(東萊府殉節圖)」와 유사한데, 대동소이한 표정을 한 왜군의 대부분은 의외로 해학적인 인상이 강하다. 장엄하고 엄숙해야 할 결투 장면에서 왜군들을 다소 희화화시킨 것은 충의로써 순절을 선택한 동래 군민들의 비장한 모습과 대별하여 왜군들을 비하시킨 것으로 간주되며, 이는 도화서화원과는 달리 재지화원이 가진 시각적 자유로움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의의와 평가]

『충렬사지(忠烈祠志)』의 기록과 비교하면 전투 당시를 충실하게 재현한 기록화로서의 가치가 높으며, 사전의 전말을 한 화면에 담아 이야기를 서술해 낸 구도도 뛰어난 편이다. 또한 부산진순절도의 작가가 동래부 무관직을 역임한 화사인 까닭에 지방 화사(畵師)와 지방 회화 연구에도 중요한 사료가 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11.22 항목 공개 집필자 및 관련 연구자 내부 검토를 통해 원고 수정
2023.03.08 비공개 처리 전문가 확인 후 수정 진행
2021.06.25 내용 수정 [특징] 부산진성 관련 내용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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