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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승구도』 「부산진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185
한자 槎路勝區圖釜山鎭圖
영어음역 Busan Jindoin Saroseunggudo
영어의미역 The Parade of the Diplomatic Missionaries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오인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도
작가 이성린
서체/기법 채색
제작 시기/일시 1748년연표보기 - 제작
현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

[정의]

1748년 조선 통신사 수행원 이성린(李聖麟)부산진의 모습을 그린 지도.

[개설]

『사로승구도(槎路勝區圖)』 「부산진도(釜山鎭圖)」는 1748년 당시 이성린통신사 수행원으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동래부에 머물러 있는 동안 부산포를 묘사한 것이다. 『사로승구도』 「부산진도」는 그린 연대와 작가가 명백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림에 영가대(永嘉臺)가 그려졌다는 것이 바로 자신의 임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즉 영가대통신사부산포를 출발하기에 앞서 길일을 택하여 안전한 항해를 비는 용신제를 지내던 곳이다. 부산진성 근처에 발달한 민가의 모습은 당시의 부산포 취락 실태를 보여주는 시각 자료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형태 및 구성]

『사로승구도』 「부산진도」의 중앙에 부산진성자성대(子城臺)를 배치하고 주변의 모습을 그렸다. 부산진성 앞 작은 언덕 위에 있는 기와집이 영가대이다. 영가대 위쪽의 깎아지른 산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쌓은 왜성인 자성대인데 성벽은 무시되어 있다. 수직으로 쌓아올린 부산진성임진왜란 이후 새로 쌓았는데 상세히 묘사되었다.

[특징]

부산진성자성대를 중심으로 주변 경관을 묘사함으로써 1748년 당시의 부산포를 표현하였다. 부산진성 앞의 영가대가 상세히 묘사되었고, 부산진성 남문 앞으로 난 도로를 중심으로 취락이 발달한 상황이 보인다.

[의의와 평가]

당시의 부산포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대규모로 매립되었기 때문에 『사로승구도』 「부산진도」를 통해서 18세기 중엽의 부산진성, 자성대, 영가대, 부산진성 남문 앞의 취락 등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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