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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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淰 |
영어음역 | Yu Sim |
이칭/별칭 | 징보(澄甫),도계(道溪),류심(柳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우정임 |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징보(澄甫), 호는 도계(道溪). 증조할아버지는 유영경(柳永慶)이고, 할아버지는 유열(柳悅)이다. 아버지는 전창위(全昌尉) 유정량(柳廷亮)이고, 어머니는 선조(宣祖)의 여섯째 딸 정휘 옹주(貞徽翁主)이다.
[활동사항]
유심(柳淰)[1608~1687]은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 때 가산을 몰수당하고 호남으로 귀양 간 아버지 유정량을 따라갔다가 1623년 인조반정 직후 풀려났다. 1627년(인조 5) 사마시에 합격하고, 1635년(인조 13)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38년(인조 16)에는 사은진주 겸 성절동지사(謝恩陳奏兼聖節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49년(효종 즉위년) 동래 부사로 부임하였다. 동래 부사 재임 시 유심은 왜의 우두머리에게 애완동물을 보낼 것을 조정에 요청하였고, 1651년(효종 2)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여서는 왜관(倭館)을 여는 문제로 부산 첨사 정척(鄭陟)과 동래 부사 윤문거(尹文擧)를 추고(推考)하게 한 기록 등이 보인다. 1656년(효종 7) 평안도 관찰사로 나갔고 1659년(현종 즉위년) 예조 참판으로서 고부 겸 주청사(告訃兼奏請使)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강화 유수를 거쳐 1662년(현종 3) 도승지를 지냈다. 유심은 글씨를 잘 썼는데, 특히 송설체(松雪體)에 능하였다.
[상훈과 추모]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4동 948-1번지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동래 부사 유심 선정비(東萊府使柳沈善政碑)가 있다. 『동래부지』에는 비와 관련하여 “동래부의 7개 면 모두에 동래 부사 선정비가 세워진 것은 유심이 처음이다. 이는 유심이 동래 부사에 이어서 곧바로 경상 감사에 임명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