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8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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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萊府使柳淰善政碑 |
영어의미역 | Memorial Tablet of Yushim |
이칭/별칭 | 부사 유심 청덕선정 만고불망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대연동 948-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신명호 |
[정의]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동래부사 유심(柳淰)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유심[1608~1667]은 1649년(효종 즉위년) 11월부터 1651년(효종 2) 7월까지 1년 8개월간 동래부사를 역임하였다. 『동래부지(東萊府誌)』에 의하면 동래부의 7개 면에 모두 선정비가 세워진 동래부사로는 유심이 처음인데, 이는 유심이 동래부사에서 바로 경상감사로 임명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즉 동래 사람들은 동래부사에서 경상감사로 영전한 유심의 선정비를 세움으로써 계속해서 유심의 선정을 기대하였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위치]
동래부사 유심 선정비(東萊府使柳淰善政碑)는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대연동]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있다. 원래는 동래읍성 서문이 있던 지금의 KT 동래지점 뒤에 위치하였는데, 도로 공사 및 인근의 건물 공사 등으로 훼손의 우려가 있어 2001년 4월 16일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형태]
전체적으로 비석의 몸돌에 비해 머릿돌과 받침돌이 다소 작은 편이나 조각 기법이 조선 시대의 서민적이고 해학적인 면이 잘 나타나 있다. 비석의 정면에는 제액(題額)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비석을 세운 연대와 비석 건립의 중심인물, 석재를 다듬은 석공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 비석은 세워진 원래 자리에 있던 자연석 바위를 조각한 귀부(龜趺)와 장방형의 비신(碑身) 및 이수(螭首)로 구성되어 있다. 귀부는 원래 자리에 있던 작은 바위의 윗면만 가공하여 다듬었기 때문에 거북의 등이 산처럼 다소 높고, 등에 비좌(碑座)는 생략된 채 15㎝ 정도의 홈을 파서 비를 세웠다.
조각 수법은 거친 편이나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서민적이며 다소 해학적인 모습이다. 이수도 등이 높은 귀부와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삼각형으로 처리되었는데, 중앙 하단에 상서로운 구름무늬를 두고 상단에 여의주를 중심으로 좌우에 쌍룡을 배치하였다. 동래부사라는 신분상 발톱이 3개인 삼조룡(三爪龍)으로 표현되었다. 비의 크기는 높이 231㎝, 너비 81㎝, 두께 20㎝이다.
[금석문]
비의 제목은 ‘부사 유심 청덕선정 만고불망비(府使柳淰淸德善政萬古不忘碑)’라고 적혀 있다.
[현황]
동래부사 유심 선정비는 거의 훼손된 부분 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2001년 10월 17일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부산광역시 소유이며,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서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동래부사 유심 선정비는 부산 지역에 세워진 선정비로는 규모가 가장 큰 편에 속한다. 또한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세울 당시의 조각 양식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