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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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忠念 |
영어음역 | Gim Chungnyeom |
분야 | 종교/불교,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인물/종교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나철회 |
[정의]
일제 강점기에 부산 범어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충념(金忠念)[1897~?]은 1897년 4월에 태어났다. 불문에 염원하여 승려가 되기 위해 범어사에 입산하여 1900년대에 범어사 전문 강원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범어사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을 중심으로 범어사 3·1 운동이 전개될 때 김충념도 참여하였다. 3월 17일 명정학교와 지방학림의 졸업생 송별회에서 승려 김영규(金永奎)는 축사를 한 후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할 것을 학생들에게 권고하였다. 송별회를 마친 후 김충념은 김상기(金相琦) 등과 함께 3월 18일 만세 시위를 준비하기 위하여 동래구 복천동에 있는 범어사 포교당에 당도하였으나, 이미 일본 경찰에 의해 주모자가 체포되고 의거는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김충념은 다른 동지들과 은신하여 새로운 계획을 세워 3월 19일 대대적인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로 인해 김충념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부산감옥소에 투옥되었다. 출옥 후 김충념은 범어사에서 주로 불교 전문 강의를 맡아 후배 승려와 일반 신도들에게 불교 정신과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그 후 김충념은 계속적으로 종무하여 범어사 주지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사망 연대는 알 수 없다.